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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은 Oct 31. 2024

덕산 아파트

(9)

날이 밝자마자 남편은 서울로 향했다. 오후에 출근해야 하고 정리할 것도 많았다. 자주 연락드리겠다는 남편의 서글서글한 말투에 엄마는 아이고 탄식했다. 남편이 엄마를 안아주고는 멀찍이 서 있는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 나는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남편을 배웅하고서 엄마와 단지 내를 걸었다. 엄마의 마스크가 비뚤어져있었다. 나는 마스크 와이어를 코에 눌러 밀착시켰다. 

“이렇게 해야 안전해.”

나는 손가락으로 엄마의 마스크 와이어를 꾹꾹 눌렀다. 

“숨은 잘 쉬어져?”

내 말에 엄마가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내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가에 있었던 슈퍼와 문방구는 화장품 가게, 커피숍, 사우나로 바뀌어 있었다. 그마저도 영업 중단이거나 단축 운영 중이었다. 엄마와 나는 부동산 앞에 서서 유리창에 붙은 매물 용지들을 살펴보았다. 주로 전세나 매매 상품들이었다. 덕산 아파트와 비슷한 조건의 매물들에 눈이 갔다. 당연히 서울 전세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아파트는 나중에 팔자. 지금은 요양원이 제일 위험하대.”

나는 엄마의 표정을 살피려 했지만 마스크 아래에 감춰졌기에 읽을 수가 없었다. 다시 집으로 향하려 하는데 트럭과 크레인 한 대가 단지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표석은 밧줄로 칭칭 묶여 있었다. 크레인이 천천히 움직였고 표석이 기울어졌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 몇이 모여들었다. 옹기종기 모인 주민들은 표석이 트럭에 옮겨지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내일 혹은 모레에 인부들이 몰려와 새로운 덕산 아파트 입구를 만들 것이다. 매끈하게 포장된 직각형 대리석 입구는 무엇이든 나아지고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심정으로 표석이 있던 자리에 남겨진 지저분한 흙과 돌멩이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깊고 어두운 구멍. 축축하고 검은 구멍이 번져서 이곳 전체를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순간 바람이 불어 부연 흙먼지가 날렸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아래로 흩어져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엄마의 손을 놓고 두 눈을 가렸다. 눈가가 따가웠고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모래에 불과했지만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은 것이 눈알을 마구 찌르는 듯했다. 그때 무언가 허공에 허우적대고 있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주름지고 메마른 감촉이 느껴졌다.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는 기억하는 것. 오로지 엄마만의 기억이었던 것이 내게로 전해졌다. 그곳엔 잊고 있었고,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어떤 온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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