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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은 Oct 31. 2024

덕산 아파트

(7)

남편이 카페 내부를 살펴보며 깔끔하다고 말했다. 나는 제법 일이 익숙해진 엄마에게 커피 두 잔과 치즈머핀 하나를 주문했다. 

“정 서방 왔어.” 

나는 카운터에 서서 엄마에게 속삭였다. 엄마는 웃기만 했다.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 더 말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엄마의 신경은 곧바로 빵 굽기에 쏠렸다. 남편이 커피 두 잔과 치즈 머핀이 담긴 쟁반을 들었고 나는 엄마 정 서방이야! 하고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그제야 엄마가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꾸벅 인사했다. 

“카페가 무척 좋은데요. 멋있으세요.”

남편이 너스레를 떨었다.

“여기 있는 메뉴 내가 다 만들 수 있어.”

엄마는 카페 사장인 것처럼 큰소리를 쳤다. 카페에서 일을 할 때만큼은 웃는 일이 많았다. 남편과 나는 마주보고 앉았다. 

“전화 못 받아서 미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남편은 포크로 치즈머핀을 잘랐다. 먹어봐, 맛있어. 대화가 길어지거나 무거워질 것 같으면 화제를 돌리는 것이 남편의 주특기였다. 

“엄마에겐 아직 말 못했어.” 

내가 치즈머핀을 포크로 잘게 부수며 말했다. 남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의 눈가가 피로로 가득했다. 나는 머그잔만 매만졌다. 반이나 남았는데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일을 마친 엄마는 빵이 담긴 봉투를 품에 안고 있었다. 팔고 남은 재고라고 했다. 엄마의 물리 치료사 일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자식뻘 되는 동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대신 마트나 떡 공장, 급식소를 전전했다. 엄마는 반값 할인 제품이나 남은 떡, 반찬들을 가져왔다. 덕분에 생필품 걱정이 없었고 떡과 반찬은 종류별로 원 없이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용해도 남은 것이기에 떡이나 반찬은 금방 상했고 생필품들은 똑같은 종류만 쌓였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입을 모았다. 봉투에 담긴 빵들을 살펴보며 그런 이야기들을 꺼냈다. 엄마가 그땐 그랬지, 라며 웃었다. 

남편이 승용차 뒷좌석에 놓인 박스를 가리켰다. 청도에 들려 미나리를 샀다고 했다. 

“장모님께서 제일 좋아하시잖아요.” 

“암, 미나리는 지금이 제일 맛있지. 철 지나면 질겨져. 일주일만 지나도 맛없을 걸.”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데도?”

내가 끼어들었다.

“뭐든 제철이 중요하지. 각자 자기 계절이 있어. 너도 봐라. 시월 돼지띠니까 복 있게 살잖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남편이 덧붙였다.

“그럼 뭐해. 잡아먹힐 건데.”

나는 괜히 입술을 삐죽거렸다.

“요즘은 비건이 대세야.” 

남편이 핸들을 톡톡 치며 말했다. 우리는 저녁으로 미나리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마트에서 삼겹살 두 근과 술을 샀다. 각종 보조비타민제와 건강식품, 쓸모없겠지만 두뇌영양제도 구입했다. 

고기는 남편이 굽고 미나리는 엄마가 다듬었다. 쉬라고 했는데 엄마는 손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며 쉴 틈 없이 부엌을 오갔다. 나는 반찬들을 꺼내어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았다. 엄마의 잔에는 물을, 남편과 내 잔에는 와인을 부었다. 미나리는 싱싱하고 아삭아삭했다. 엄마는 카페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와 남편은 미나리를 아삭아삭 씹으며 그런 일이 있었어? 대단하네, 커피가 맛있더라고요, 와 같은 리액션을 했다. 엄마도 미나리를 아삭아삭 씹으며 거기 일하는 게 참 재미가 있더라고, 라고 대꾸했다. 우리는 일주일만 지나도 질겨지고 맛없어질, 지금이 가장 맛있는 미나리를 먹었다. 


티브이에서는 리포터가 전문가와 함께 산을 돌아다니며 약초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기억력 증진, 면역력 상승, 풍부한 비타민 등 온갖 좋다는 것들이 자막으로 띄워졌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작은 공책에 약초의 효능에 대해 메모했다. 아까 뭐라고 했지? 몇 번이나 되물어가면서 볼펜으로 꾹꾹 글씨를 눌러썼다. 남편은 인내심 좋게 대답을 해주었다. 엄마가 자꾸만 되물을 때는 대신 써주기도 했다. 역시 정서방 밖에 없네. 엄마가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도망치듯 작은 방으로 향했다. 내 몸을 숨길 곳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작은 방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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