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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은 Oct 31. 2024

덕산 아파트

(6)

저녁이 되자 엄마가 외투를 걸친 채 고집스럽게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산책을 가자고 했다. 덕산 아파트 뒤편으로 산책로가 있었다. 색색의 조명등과 개천과 잘 닦인 길이 이곳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예전엔 그냥 산길이었는데. 내가 중얼거리자 엄마가 여기도 많이 변했지, 라고 되받아쳤다. 나는 인터넷에서 본 잡다한 지식들에 대해 말했다. 날파리를 잡는 데는 끓인 식초 물을 넣으면 된대. 강력 접착제는 드라이기로 열을 주면 잘 떨어진대. 산책을 하는 내내 떠드는 사람은 나였고 엄마는 듣기만 했다. 문득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알아듣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엄마와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남편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려웠다. 어쩌면 평생 모르는 편이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 도장 하나 찍었을 뿐이니까. 그랬을 뿐인데. 

“엄마는 다른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았어?” 

돌이켜보면 엄마에게도 남자친구 비슷한 사람들이 있긴 했다. 그때의 난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엄마와 내가 사는 집에 낯선 이가 들이닥치는 꿈도 여러 번 꾸었다.  

“있었지.”

“왜 같이 안 살았어?”

“너도 살아봐라. 혼자가 제일 편하지.”

엄마는 운동화 앞코로 흙길을 툭툭 찼다. 

“나도 혼자가 편한 것 같아. 혼자가 되려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나쁜 건 아니지만.”

엄마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야.” 

바람이 불어 엄마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엄마의 머리는 언제나 깔끔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엄마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혼자가 되어야 할 때가 있어.” 

엄마는 되어야 할 때, 에 힘을 주었다. 나는 엄마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손을 잡고 일어섰다. 누구보다 악력이 세다고 자부했던 엄마의 손은 이제 작고 여위어져 있었다.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순순히 따라왔다. 

늦은 저녁을 차렸다. 냉이 된장국을 상 한 가운데에 놓았다. 국에 넣고 남은 두부와 김치를 한데 볶아 접시에 담았다. 잡곡밥을 두둑이 담다가 반을 덜어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배가 고팠는지 엄마는 군소리 없이 그릇을 비웠다. 그런 엄마를 지켜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남편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나는 시간 나면 한 번 들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은 일이 끝나는 대로 오겠다고 했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 약을 한 알 한 알 세면서 먹었다. 개수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달력에 표시도 꼼꼼하게 했다. 나는 장보기 목록에 수건, 쿠션, 화분, 미끄럼방지 타일 등을 적었다. 그러는 동안 엄마가 수납장 아래에 보관해둔 미용 가위를 찾아냈다. 나는 보자기를 엄마의 어깨에 두르고 베란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한가운데에 의자를 두었다. 신문지 위에 얇고 퍼석한 머리카락들이 쌓였다. 

“조만간 집을 팔아야겠어.”

엄마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코끝이 간지러웠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기침을 했다. 

엄마와 나는 거실 한 가운데에 요를 깔고 잠이 들 때까지 티브이를 봤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소도시가 소개되었다. 하얗고 파란 건물들과 선박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다. 참으로 멀어보였다. 약 기운 때문인지 엄마는 쉽게 잠들었다. 내일도 엄마는 보조 바리스타로 카페에 나갈 것이다. 열심히 테이블을 정리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겠지. 그렇게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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