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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은 Oct 31. 2024

덕산 아파트

(8)

내 방은 스무 살에서부터 그대로였다. 계절마다 이불정도만 바뀌었다. 홀로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에 남편이 나란히 누웠다. 어느새 거실은 어두웠고 티브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수고 많았어.” 

남편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는 내가 아니라 남편이 했다. 그의 성격답게 도리나 의리 따위를 지키느라 말이다.   

“당신은 해외에 있으면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

“한국이 최고야.”

“왜?”

“말이 잘 통하니까.”

“나랑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해?”

남편은 또 그런다며 눈을 흘겼다.

“내가 파리에 있었다면?” 

나와 남편은 때때로 가정법을 썼다.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를 바꿨다면, 첫 데이트 때 와인을 한 병만 마셨다면, 서울 전세 빌라가 아니라 지방 소도시 아파트에 살았다면, 남편이 해외 지사 근무 파견을 거절했다면, 내가 출판사를 그만두었더라면, 따위의 대화를 하다보면 결론은 언제나 하나였다. 지금과 같았을 것이다. 혹은 더 나빴을지도 모른다. 이런 말들을 하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럼 파리가 최고였겠지.”

남편에게서 섬유유연제와 담배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그것은 남편만의 고독이었다.   

“당신 몽골은 안 가봤지?” 

“응.”

“거긴 왜 그렇게 좋아 보일까. 초원과 유목과 젖밖에 없는데.”

“오로라도 있대.”

남편이 덧붙였다. 나는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문득 이곳에 온 첫날에 마주한 표석이 떠올랐다.  

“입구에 있는 표석 봤어? 여기 주민들이 그거 때문에 말이 많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남편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여기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겨워서 바꾸고 싶은 가봐. 그거라도 바꾸면 더 나은 곳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이 들려나.”

나는 자세를 바꿔 남편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얼굴의 윤곽이 또렷이 드러났다. 얼굴을 마주본 지가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꿔서라도 나아지고 싶은가보네.”

남편이 무심히 말했다. 나는 울음을 참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남편이 그런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남편의 도드라진 날갯죽지가 느껴졌다.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았다. 요즘 너무 많이 운다. 울면서,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다. 그런 생각을 참을 수가 없어 울게 된다. 이해를 찰흙처럼 만질 수 있다면 나 같이 손재주 없는 사람들은 망가뜨리고도 남을 것이다. 

운전을 하느라 고단했는지 남편은 낮게 코를 골았다. 나는 숨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부엌으로 향했다. 박스에는 손질이 덜 된 미나리들이 있었다. 풋풋한 냄새가 났다. 미나리들을 씻어 지퍼팩에 담았다. 냉장고를 열어 오래된 반찬과 유통기한이 지난 식빵, 유제품 등을 버렸다. 휴대폰으로 미나리 요리를 검색했다. 검색은 곧 부동산, 25평 오래된 아파트 매매, 치매 초기 증상, 치매 극복, 치매 약, 요양원, 요양비 등으로 나아갔다. 그중 도립 요양원 홈페이지를 클릭했다. K시 끝자락에 있었다. 산에 둘러싸여 있어 외진 곳이지만 공기만큼은 쾌적해보였다. 방역을 철저히 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제일 먼저 떴다. 사진 속 노인들은 환자복을 입은 채 휠체어를 타고 인공 정원을 산책하거나 잡지나 책을 읽고 있었다. 자작나무 숲이 담긴 사진도 있었다. 하얗고 길쭉한 나무들 때문에 꼭 눈이 내린 것만 같았다.  

밖은 여전히 깜깜했다. 달력과 약 봉투 사이에 병원에서 나눠준 알츠하이머 관련 책자가 꽂혀있었다. 이곳에 엄마의 미래가 있다. 입원을 고려해보라던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 가정 돌봄이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카페 프로그램은 어떻게 되나요? 못 하나요? 내 질문에 의사는 그렇죠, 때가 때이니만큼, 이라고 말했다. 카페가 아니더라도 다른 프로그램들이 있으니 하루에 한 번은 꼭 참여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시범이었으니까요. 의사의 말은 어딘가 무기력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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