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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선인장
김성신
웅크리던 나를 꼿꼿하게 폈어요
깨진 항아리 구멍으로
달빛 쏟아질 때마다
어제의 스며든 기억으로 오늘이 발생하죠
비스듬히 편 두 손
잘못 스친 상처, 가시로 자라죠
품어둔 말, 층층 쌓기도 해요
식물이잖아요, 오해를 참는
기대는 법을 잊고
가끔 먹구름을 선식으로 먹는
청록으로 잎 솟을 때마다
늘 조금씩 창밖을 향해 어긋나기도 하죠
모래와 물과 사람이 눈물과 섞여 버무려진 사막
눈, 코, 입, 지운 얼굴로
어디서 생장을 멈췄을까
오늘의 끝은 차라리 둥글둥글해
나는 내게서 자꾸 모르는 사람
가끔 지난 것들을 부추겨
오르락내리락 물결치는 기분을 노랗게 피워요
잎과 잎이 따로 비껴선
축 처진 그림자를 지우며
날카로운 가시 겨눈 채
돌연, 일어나 꿈틀거리며
아직도 죽어야 사는 나를 향해
부드럽게 찌르기도 하는,
ㅡ『공정한시인의사회』(2021, 7월호)
―계간『詩하늘 103』(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