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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Oct 29. 2024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본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나는 때로 콜레라를 변호하고 싶었다. 적어도 콜레라가 그렇게 무서운 병이 된 것은 콜레라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콜레라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콜레라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콜레라가 된 것이니까.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다 해도 그 역시 돈 없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노인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말이다.

로자 아줌마는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기에게 친절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나를 죽지 않게 하려고 온갖 학대를 다 할 거다. 그러려고 만든 의사협회라는 것도 있단다. 그들은 끝까지 괴롭히면서 죽을 권리조차 주지 않을 거야. 그것이 그들의 특권이니까."

죽음은 사람에게 중요성을 부여해 주고, 사람들은 죽음이 다가온 사람을 더 존경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쓸 때면 늘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를 쓰잖아요."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수백만 이상의 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그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까...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서워..."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잖아요."

나는 그녀의 눈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딴 곳을 보지 않기 위해.

웃기는 말이었다. 중벌을 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특히 벌 받을 일을 하지 않은 사람 중에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그리스도보다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었던 셈이니까.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처넣는 것보다 더 구역질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

  

     해설   

'가장 프랑스적인 감수성은 소소한 삶의 굴절과 결을 주목하면서 그 아래에서 인간 본질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었고 그들이 표현해 낸 것은 고독하고 쓸쓸한 삶의 풍경이지만 결국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이기 때문이었다.

<자기 앞의 생>을 덮고 나자 문득 진심을 다해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렇게 그를 부르고 싶은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과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또 문득 누군가 아주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자기 앞의 생>은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고, 상처받을까 봐, 나의 것을 잃어버리고 손해 볼까 봐 두려워하는 나약한 마음에 문을 두드린다. 너의 안에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삶은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가난하고 공허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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