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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언니 Jul 24. 2024

여름엔 쇼비뇽블랑을

육퇴후 한잔

전생의 삶을 살때는 미쳐 몰랐다. 아니 사실 '잊었었다'가 맞겠지 임신 중기가 지나고 후기는 여름의 길목이었고 나는 술찔이 었지만 여름의 저녁에는 어김없이 맥주를 마시고 밥을 먹지 않았던 그런 애주가였다.

진짜 막달은 완연한 더위의 여름이라 길을 가다가도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 한잔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별수없이 남편이 사다주는 제로 맥주는 나의 허기를 달랠 수 없었다. 그런 알콜이 없는 것 따위로는 열달을 참은 나의 영혼을 달랠 수 없는게 당연하지... 싶었지만 그래도 어떤 원망도 듣지 않으리라 싶어 참아냈다.(대한민국 엄마들 화이팅!!!특히 여름에 출산하는 엄마들 진짜 대화이팅이다!!)

나는 이제 만 4년을 거뜬히(?) 애를 재우고 나와도 시간이 좀 넉넉한 유치원을 가서 낮잠을 자는 녀석의 엄마니까 쏜살같이 재우고 한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눈물의 세월은 여기에 좀 차분히 풀어볼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고난의 세월을 지나고 이렇게 앉아 바람이 불고 습기 가득한 날에 와인을 한잔 하고 있으려니 참 이곳이 나트랑 같고 해외의 어딘가에 콧바람 쐬러 온 것 같고 그렇다.

코스트코 커클랜드 쇼비뇽 블랑이 나에게 이런 여유를 가져다 줄 줄이야.

사실 쇼비뇽 블랑은 굴이랑 먹거나 겨울에 마시는 것을 선호했지만 어쩐지 요즘엔 혼자 육퇴 후 그렇게 화이트 와인을 한잔 하고 싶어진다. 시콤달콤한것이 입맛을 돋궈 야심한 시간에 치즈라도 좀 먹어둬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긴하지만 나는 살이 찔 공간이 더이상 주어져서는 안되는 상황과 미모에 예민한 남아의 엄마기에 좀 참아보도록 한다. 남편은 전혀 술을 먹지 않는 사람이기에 매일같이 육퇴 후 한잔 거나하게 걸치는 내 모습을 좀처럼 이해 못하지만 최지우 언니를 좀 봐봐라 아마 그 언니도 몰랐을걸? 육퇴 후 술한잔이 이렇게 달콤하고 천국을 가져다 줄지?

아무튼 오늘 이밤은, 이 끈적하고 뜨듯한 바람이 부는 이런 날에는 괜히 시원하게 칠링한 쇼비뇽블랑이다.

괜히 가보지도 않은 뉴질랜드 말보로 쇼비뇽 블랑이 최고라는 찬사와 함께 살풋한 레몬, 약간의 초록채소, 묘하게 전해지는 꽃내음 정도를 느끼며 시큼새큼한 쇼비뇽블랑을 전한다.

육퇴 후, 다들 괜히 한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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