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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

미소한 구름입자가 충분히 성장하여 빗방울이 되는 운저가 낮고 두터운 구름

by 쑤필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편의 격분된 모습이었다.

남편은 왜 본인에게는 선택권을 주지 않냐며 화를 냈다.

이혼에 대한 선택권이라.

나랑 결혼해 줄래?라고 나의 의견을 묻고 결혼을 해놓고는

이혼에 대한 선택은 왜 너에게만 주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매달리듯, 그를 타이르듯 울고 불며

철회의 이유를 남편에게 설명했다.


"꼭 이혼신청서를 접수한 상태에서 생각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다시 가서 신청할 수 있어.

내가 철회한 게 왜 이렇게 화낼 일인 거야?

오빠가 이런 마음이 들 줄 몰랐어. 알았다면 가서 철회하지 않았을 거야.

마치 너무 쉽게 내가 동의한 거 같아서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그리고 지금 난 당신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덧붙였다.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왜 먼저 심사숙고해서 생각해 보고 마음에 어떠한 결정이 서거나

확고해지고 나서 이혼 신청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한참을 꾸짖음에 가까웠던 화를 낸 후 남편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통보에 가까운 그의 말이 끝난 후, 통화를 끊었다.

차에서 난 또다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잡혀있던 지방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여전히 연락이 없던 그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출장에서 언제 와? 다녀오는 날 만나서 얘기하자"

"웅, 알았어"

왜 이 문자 하나에 난 또 안도하는가.

폭풍 같은 나날들을 보내며 그 사이 몸무게가 줄었다.

출장 기간 동안에도 끝나고 그를 만날 생각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불안했다.

우리의 위기가 빨리 지나가길.



드디어 2박 3일 출장 일정을 마치고 올라가는 날이다.

밖은 먹구름으로 어둑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탓에 운전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던 중 남편한테 연락이 왔다.

7시에 친정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카페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그를 기다렸다.

얼마 안 있다가 남편의 차가 카페 주차장에 도착했고 그가 들어왔고 반가웠다.

남편은 그다지 수척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다행이다.

9년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일주일 정도 지난 시간 동안 보지 못했던 그의 시간이 궁금했다.

일상을 묻고 안부를 묻고.

어색함에 애써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협의 이혼을 말했다.

어차피 한 달의 숙려기간이 있으니 접수해 놓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도대체 왜 꼭 그래야 하는가.

하루빨리 이혼하고 싶은데 나중에 있을 숙려기간 한 달이 아까운 듯

그는 이혼을 빠르게 진행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래, 원하면 협의 이혼 신청서를 내고 생각하는 것은 들어줄 수 있다.

대신 난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이 한 달의 시간, 네가 원하는 대로 이혼할 수도 있는 상태이지만

난 원래 우리의 일상처럼 지내길 바랐다.

짧지 않은 우리의 시간과 일상을 네가 기억하길 바라면서.


그래서 내가 바랐던 대화와 달리 우리는 내일 다시 협의 이혼신청서를 내고

함께 지내며 한 달의 숙려기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음이 찢어진다.

내가 출장 가 있는 시간 동안 네가 뭘 했는지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봤었으면 그렇게 마음 아파하지 않았을 텐데.

너의 그 가증스러움을 보고 콧웃음을 치고

지금 너의 아내 아픔보다 걸레 같은 상간녀 치마폭에 허덕이는 너를

한심하게 바라봤을 텐데.


너를 만나는 오늘을 불안에 떨면서 기다렸다.

비바람이 치는 먼 길도 오로지 너를 만날 생각에 괜찮았고

지금 다시 이혼 서류를 접수하자고 말하는 너의 모습에

혹여라도 내가 옭아맨다 생각할까 싶어

찢어지는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바람이라는 의심 하나 없이 너의 힘듦만을 걱정하고 있는 나한테

너는 그랬으면 안 됐다. 정말로.

개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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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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