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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자
19화
#19. 이야기 열아홉, 축하의 메세지
by
Elia
Dec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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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누가 내 귀에서 방망이 질을 하는 거 같다.
교정이라기 하기에는 예술관 같은 교정을 걷는데
벌써 합격자 발표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마음만 급하고
속도가 전혀 붙지 않는다.
숨이 먼저 차서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결과는 나온 거고 바뀔 리가 없을 테니까.
어느새 발표장 입구에 서 있었다.
2009, 2011,
201... 2012?
2012! 있다!
이럴 수가....
내가 해냈다.
6개월 동안 울면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외로움을 느끼며 밤늦게 까지 미친 듯 혼자 연습했던 내가 발표장 앞에 서 있다.
전화... 맞다.. 전화...전화..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 여보세요? 아빠! 아빠! 나 붙었어! 학교 붙었어!"
" 뭐? 정말이야!!! 장하다. 우리 딸. 축하해."
" 엄마, 나 됐어!"
" 아! 할렐루야! 하나님이 기도 들어주실 거라 믿었다. 잘했어!"
"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 어머
어머.. 어머.. 흐흑.. 흑흑..
그 어려운걸 혼자 해냈구나! 아휴. 연아. 고맙다. 역시 내 제자야...."
담임 섬생님은 일반 고등학교 입시 결과 발표는 전날 나와서 불합격자들의 추후 진로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내 합격 소식에 이제 힘이 난다고 하셨다.
어른들이 모두 내게 감사하다, 고맙다. 하신다.
오히려 내가 감사드리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태어나 처음 받아본 '합격'이란 단어였다.
학교에서 받아온 입학안내 서류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준비해야 할 것들을 확인하였다.
집에 오자마자 하니, 교감선생님, 학생주임선생님 전화가 순서대로 왔다.
하니는 경기여고로 가게 되었고 다른 몇몇 아이들은 홍대부속, 이화여고, 영등포 여고로 모두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같은 중학교인데 한 명도 겹치는 고등학교가 없구나...라고 했다.
저녁에 엄마는 축하하는 뜻으로 내가 좋아하는 잡채를 만든다고 하고 아빠는 케익을
사 오겠다고
하셨다. 동생 범이가 자기 좋아하는 갈비도 만들라고 떼를 써 엄마가 서둘렀다.
' 이건 생일 때 보다 좋은데?'
나도 모르게 신이 났나.
피아노 앞에서 다 끝난 입시곡을 또 치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 연아, 전화받아, 정선이라는데?"
누구? 그 애가 왜?
" 여보세요? 연이니? 나야, 정선이. 축하해. 방금 너네 엄마한
테
들었어."
" 응... 어.. 너는 어느 학교야? 영등포여고?"
" 그게... 나 떨어져서 후기로 국악예고 무용과 준비해. 실은 선화 들어가려고 전부터 준비했는데 성적이 안 됐어... 나 열심히 할 거야.
그리고.. 미안해. 그동안 말 안 해서. 희정이 하고만 다녀서."
" 으응.. 네가 말 안 한 사정 있겠지... 준비 잘하고 꼭 합격해 정선아.
그리고 졸업식 땐 나하고 같이 사진 찍어줄래?"
" 응.. 꼭. 축하해."
" 응. 나 기도할께. 너 국악예고 합격되게 해 달라고."
정선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엔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좋은 친구라면 언젠가는 너의 진가를 알고 네게 돌아올 거라는 말이.
태어난 곳도, 자라온 배경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만나 친구를 만들고, 연인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이성이 결혼을 하기도 하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벗이 되기도 한다.
모든 관계는 서로의 '믿음'이 무너져 버리면 같이 만들어 온 집 같은 관계가 허물어진다고 느낀다.
조금이라도 서로의 믿음의 터전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걸 '희망의
잔해'라고
하고 싶다.
상대와 내가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내게 남은 희망의 찌꺼기를 보고 믿고 응원해 준 거니까.
졸업식 전까지 시간이 많이 생겼다. 사복을 입고 롯데월드에 놀러 가기도 하고 엄마의 쇼핑도 따라가고 아빠와 등산도 갔다.
제일 행복한 건 아침에 8시 넘어 일어나 이불 안에서 밍기적 거리는 거였다.
아침에 출근하시던 아빠가
,
" 야.... 네가 지금 제일 좋을 때다."라고 말했다.
졸업식 날, 눈이 많이 내렸다. 2월 중순인데도 한 겨울처럼 퍼부었다. 눈송이가 너무 커서 운동장은 금새 하얀 눈밭이 되어버렸다.
아빠는 출장 중이라 엄마가 노란 프리지아 꽃다발을 들고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꽃
들고, 우산
들고 사진을 찍
었다
. 우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다.
" 연아, 친구가 저기서 너 부르는데?"
엄마가 퍼붓는 눈 덩이 속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며
가리켰다.
정선이가 나무 밑에서 안개꽃 섞인 핑크색 카네이션 꽃다발을 들고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정신이도 엄마와 둘이였다.
우리 둘은 우산을 하나로 줄이고 둘이 같이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 희정이는?"
내가 먼저 물었다.
" 몰랐구나. 우리말 안 해. 같이 안 다닌 지 오래야.
계속 자기 하고만 같이 친하자고, 안 그러면 나랑도 같이 안 다니겠다고.. 너처럼.
뭐 때문에
?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했더니 무시하고 그다음부터
말 안 하더라고."
" 뭐가 그러냐. 그럼 왜 그동안 둘이만 다닌 건데."
" 그건... 미안해. 너한테 말하려는 날은 짜증 내고 화내고. 그러다
또 걔가
웃으면서
붙고.... 모르겠다,
나도.... 힘들었어. 친한 척하는 게."
" 아후... 너도 참.."
정선이는 국악예고 무용과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내 프리지아 꽃다발을 보더니 "향기
좋네"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꽃다발을 바꿔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큰 교문이 서서히 닫히려
했
다.
엄마들의 잠깐 수다도 끝나가고, 우리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몸 건강히 고등학교 생활 잘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면서.
학교 생활 안정되면 꼭 다시 만나자고 했다.
짧은 것 같으면서 긴 중학교3년의 이야기가 하얀 눈으로 덮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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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자
16
#16. 이야기 열여섯, 여자답게? 여성스럽게!
17
#17. 이야기 열일곱, 중학교3학년
18
#18. 이야기 열여덟, 경쟁의 시작
19
#19. 이야기 열아홉, 축하의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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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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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와 일본에서의 생활을 기록합니다. 배고픈 마음에 위로가 되는 글들을 수집하고 씁니다. 마음의 레시피 조금씩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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