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자
#18. 이야기 열여덟, 뭐가 중요한 건데②
학교에서 받아온 고등학교에 대한 자료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아빠는 출근하시기 전에 입시 자료를 보시더니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인지 한번 더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계속 예술로 진로를 결정할 것인지,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노력해도 운이 따라야 하는 분야라고 하셨다.
엄마는 음악 예술로 잘 나가는 애들은 다 응시할 텐데 지금까지 준비를 해 온 아이들과 경쟁할 수 있겠냐고 했다.
" 아빠, 엄마,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가기 위한 첫걸음이야. 그리고 국비 장학생인데?! "
해 본 적 없는 공부를 6개월 남겨 두고 결심했다.
며칠 후 담임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다.
" 어머님, 연이가 지원서를 냈더군요. 조만간 진로 상담 때 다시 말씀 드릴께요. "라고.
엄마는 담임 선생님과 연락 후 학교 입시에 필요한 공부자료를 알아보셨다.
나의 결정에 의아해 하면서도 6개월이라는 짧은 준비 기간에 쫄지 않고 도전하겠다는 황당한 내 행동에 웃기만 했다.
" 하하... 참나... 학교 무섭다고 울던 게 학교 가겠다고 할 때, 엄마는 속으로 기도 했어.
내 아이에게 무엇이 중요한 건지. 그건 학교도, 성적도 아니고 네가 하겠다는 마음이더라. 연아, 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성적도 성적이지만 합격하고도 그 먼 거리를 매일 아침 등교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밤이야. 견뎌낼 수 있을지 엄만 그게제일 걱정이야."
아직 시험도 안쳤는데 엄마는 그다음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방과 후에는 따로 입시 준비를 하였다 학교에서는 반이 멀리 떨어진 하니에게만 말하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 외의 아이들은 마음을 열어놓고 말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선, 희정이는 둘이서 항상 같이 붙어 있었고 나와 마주치면 '안녕?'인사 조차 살갑지 않았다. 치고 박고 욕하며 싸운 것도 아닌데.....
희정이는 유독 내 앞에서 정선이에게 "귀엽다, 예쁘다"를 연발 했다.
정선이는 여전히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내게 해준 '따돌림'으로 이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존재도 섞여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단체사진 찍을 때, 그 아이들은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진 찍었다.
희정이와 정선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웃으며 왼쪽 편 끝에서 사진을 찍었고 나는 오른쪽 상단 맨 끝에서 미소도 없이 카메라를 응시한 사진이 찍혔다. 그게 수학여행을 갔을 때 단체 사진이었다.
진학 상담을 마치고 온 엄마가 나를 데리고 빵집에 갔다. 청음 레슨 교실에서 가까웠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이 빵집에 데려온 적이 없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제과》
'참.... 가게 이름도 희한하네. '
내가 좋아하는 소보루와 단팥빵을 따뜻한 우유와 엄마는 홍차를 주문하고 창가 옆 테이블에 앉았다.
저녁노을이 빌딩 사이로 조금 보였다.
" 엄마가 오늘 담임 선생님 만나고 왔잖아. 선생님이 ' 연이 어머니, 연이 과외 공부 시키세요? 중3 오르더니 애가 성적이 엄청 많이 올랐어요! 세상에... 어떻게 가르치셨어요?' 하시더라. 엄마는 연이가 혼자서 하데요? 했지. 모든 성적이 다 올라 선생님이 너무 대견하다고. 학교 생활도 차분히 노력하는 성실파라고. 그런데, 왜 남녀공학을 보내실 결심을 하셨냐고 그러셔. 네가 너무 순진덩어리라 남녀공학 갔다가 잘 견딜지 걱정 이래. 완전히 널 온실 안 화초로 여기시더라."
" 내가? 우하하하, 재밌다!"
" 연아, 무엇을 목표로 하든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공부가 있는 법이야. 선생님 말대로 꾸준히 하다 보면 네 길이 보여. 빵 맛있지?
주문한 빵을 먹으면서 왜 젖과 꿀이 흐르는지 알겠다. 우유와 버터, 계란이 많이 들어 촉촉하고, 고소한 버터향이 가득한 그리 달지 않은 빵이였다.
가나안...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하나님이 내리신 식량처럼 위안이 되는 포근한 맛일지도 몰라.
이집트 노예 생활을 자손에게는 대물림해 주기 싫어 걷고 또 걸어 광야에서 죽도록 걸어 결국 얻은 가나안....
엄마와 마주 앉아 나의 미래를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이 따뜻하고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한 겨울, 고등학교 입시를 치렀다.
태어나 처음해 보는 경쟁이였다.
첫 날은 필기시험.
둘째 날은 실기 시험과 면접이였다.
이틀 모두 오전 9시 시작이였다.
학교는 집에서 대문을 나서, 도보, 지하철, 버스를 이용해 거의 두 시간 걸렸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
6개월 동안 준비한 시창, 청음, 피아노 실기가 끝나자 면접시험이 이어졌다.
전국에서 300명 넘게 왔다. 모집은 120명.
학교는 건물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부가 복잡했다.
어디가 어딘지 교실 찾는 것도 시험 순번 찾는 것도 힘들었다.
면접시험의 대기 시간이 가장 길었다.
'아.. 언제까지 기다리지..... 화장실! 빨리 갔다 와야겠다.'
화장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필기 시험장과 다른 별관에서 실기, 면접이 치러진 거라 많은 연습실을 통해 시험장을 찾기 어려웠다.
그때, 어떤 대머리의 중년 남자가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 저.... 아저씨, 죄송하지만 어디로 가야 B105실인가요?" 하고 물었다.
상의가 물 빠진 푸르스름한 색이 경비 아저씨 같아 보였다.
" 응? 나? 나말하는 거냐? 허허허. 학생, 한 계단 아래가 B105실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라. 다음에 보자고."
" 고맙습니다."
하고 후다닥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210번부터 215번까지 들어오세요."
세명의 심사관 되는 선생님들이 앞에 앉아 있고, 빈 의자에 앉아 순서 대로 면접을 했다.
중학교 생활에 대해, 음악을 하는 이유, 가장 인상 깊은 중학교 때 이벤트 등등 겹치는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
" 이연이, 중학교 때 가장 힘든 건 뭔가요?"
내게 질문을 한 사람은 아까 그 커피든 대머리 경비 아저씨였다.
질문하신 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난 웃음이 터졌고 긴장감은 날라가고 그냥 솔직히 다 말한 것 같다.
" 아.... 하하하. 중학교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운동장을 여덟 바퀴 뛰라고 체육 선생님이 시켰을 때, 목에서 피냄새나도록 뛰었던 것입니다.
시간 내 여덟 바퀴 완주 안 하면 두 바퀴 더 가산되거든요."
앞에 계신 다른 여자 선생님이 " 그럼 연이는 어떻게 했나요? 시간 내에 완주했나요?" 하고 웃으셨다.
" 넵, 체육부장이 제 옆에서 '지치지 마라! 여기서 뒤떨어지면 넌 지옥행이다!'라고 제 등을 밀어 같이 뛰어줘서 시간 내 완주했습니다."
선생님들이 큭큭큭 웃었다.
" 우리 학교에서 집이 좀 멀어요. 감기 걸리지 않게 건강 관리 잘해요. 수고했어요."
마지막으로 한 선생님이 내 사진이 부쳐진 서류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제서야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 네에....."
옆에 앉은 모르는 아이들도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경비 아저씨가 작곡가 이자 음악이론 교과서를 만드신 이성천 선생님이였다.
면접과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지하철로 양화 대교를 건너는데 밖이 캄캄하였다. 저 멀리 불빛들이 검은 한강 물에 반사돼 반짝였다.
아직 6시 조금 넘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짧다. 앞으로 이 길을 3년간 다닐 수 있을까?
꼭 다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