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국 (味噌汁)
일본식 된장국(味噌汁:미소시루)은 단순한 국이 아닌, 자연의 시간을 한 가지 담는다.
사원식당에서 된장국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인사말이다.
봄에 살짝 데친 유채꽃의 잎과 여린 줄기.
여름은 달짝한 즙이 씹을수록 퍼지는 가지.
가을이면 쫄깃한 버섯들.
겨울에 느껴지는 땅의 기운, 뿌리 야채.
자극적이지 않고 짠맛이 덜한 깊은 미소된장과 어울리는 계절을 먹는다.
따뜻한 된장 국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 피곤함은 순간 진정된다.
어렸을 때 할머니의 메주를 보며 자라왔다.
메주를 쑤고 장을 만드는 과정은 외갓집과는 다르게 보였다.
마당 장독대 항아리를 아이 다루듯, 독을 닦고 장을 확인하셨다.
"5년 넘은 된장은 신맛과 쓴맛이 강해 양념장으로 쓰고 2,3년 익은 건 뭐든 잘 맞아."
한국의 오래 익혀가며 국물맛을 우려내는 된장국과 달리 일본의 미소국은 즉석에서 끓여 먹는 국이다.
일본의 주요 지역인 관동(関東)과 관서(関西)의 미소국 맛도 다르다.
관동지역의 음식은 맛이 진하고, 관서지역의 음식은 담백하다는 인식이 있다.
특히 우동이나 소바 국물의 경우, 토오쿄의 국물은 짜서 마시기 어렵다고 느끼는 관서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맛의 차이에는 간장의 선호도나 채소의 맛 차이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근본에는 '다시'의 차이도 있다.
관동에서는 가쓰오부시(鰹節: 건조시킨 다랑어 플레이크)로 우려낸 다시가 선호되며, 관서에서는 다시마로 우려낸 다시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토오쿄(東京)의 맛이 진하고 교오토(京都), 오오사카(大阪)의 맛이 담백하다는 것은 이러한 다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물의 성질이 다르다.
관동의 물은 대부분 경수(硬水)로, 미네랄 함량이 높다.
관동 지역은 화산재 토양이 쌓인 지층으로, 지하수에 미네랄이 녹아들기 쉽다고 한다.
반면에 관서의 지층은 부드러운 점토질이어서 물이 연수(軟水)다. 이러한 수질 차이는 농업에 영향을 미쳤지만, 다시의 선호도까지 좌우하게 되었다.
경수에서는 다시마의 감칠맛이 잘 우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관동에서는 다시마 다시가 널리 퍼지지 않았고, 경수(硬水)에서도 감칠맛이 잘 우러나는 가쓰오부시 다시가 주류가 되었다.
반대로 관서의 물은 미네랄 함량이 적어, 다시마의 감칠맛 성분이 잘 우러나기 때문에, 관서에서는 다시마 다시가 선호되었다.
나는 지역을 이동할 때,그곳의 미소국(味噌汁)을 꼭 맛본다.
수저로 떠먹지 않는 가벼운 그릇에 담긴 국물요리.
먼저 두 손으로 그릇을 들어 올려 따뜻한 국물을 한입 마셔본다.
'다시가 잘 우려 나왔구나.'
안에 든 건더기를 젓가락으로 조금 집어 먹어본다.
옛날, 할머니가 메주콩부터 하나씩 고르며 정성 들여 만든 된장국을 상상한다.
봄의 연초록의 연한 쑥.
여름이면 햇빛 가득 받은 애호박.
가을의 아욱.
겨울에 단맛이 더 나는 시래기.
국 한 그릇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는 순간임을 느끼며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다 마셔버린다.
그리고 조용히 혼자 말한다.
"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