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국수(麵)
직장을 옮긴 뒤 부터 점심시간이 늦어졌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휴식 시간을 맞는다.
사내 식당이나 외부 레스토랑에 의자에 철퍼덕 앉는 순간 식욕이 떨어진다.
동료가 식당에 가면 배가 안 고프다가, 워크스페이스에 다시 오면 갑자기 배가 고프단다.
"맞네, 맞아."
맞장구치며 웃었다.
오늘 점심 메뉴가 뭐지?
후루룩 입에서 그리고 식도로 넘겨 버리는 점심이대부분이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고 내게 생각할 힘을 도와주는 한 끼 일지도 모른다.
하루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직장 근처 국수집(麵家)에 들렀다.
실내는 넓고, 커다란 통나무 한 그루를 반으로 잘라 만든 테이블이 레스토랑 중앙에 놓여 있었다.
내 옆 좌석엔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와 아이가, 또 맞은편에는 그레이 헤어의 고운 할머니 한 분이 식사 중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따뜻한 소바를 주문했다.
" 아앙〜자....다음은 뭐? 이거?"
아직은 혼자서 먹을 힘이 없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연신 면을 잘라 아이 입에 넣어준다.
아이는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자기 입에 맞는지 손뼉을 치며 응답했다.
큰 테이블을 같이 사용 하지만 워낙 크고 자리가 떨어져 있어 식사에 방해는 주지 않는 곳이었다.
" 조금만 참아요. 따뜻한 음식, 맛있게 먹을 때가 곧 오니까.."
맞은편에 앉으신 할머니가 조용히 아기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 엄마 앞에 놓인 따뜻한 국수는 이미 차가워진 듯해 보였고 점원에게 저분 국수 국물을 다시 따뜻하게 해 주실 수 있냐고 물으셨다.
" 손님, 알아채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
점원은 아기 엄마에게 따뜻한 국물로 빨리 바꿔 주었다.
아이 엄마는 부드러운 손수건으로 아이 입에 묻은 국물을 닦다 자신의 눈물을 훔쳤다.
엄마가 감추며 우는 줄 모르고 아이는 연신 방글방글이다.
따뜻한 김이 오르는 국수, 온화한 말 한마디로 실내는 차분히 녹아들었다.
피곤한 내 위 주머니로 삼켜 버리던 면발이 순간 감사하게 느껴졌다.
" 감사합니다."
아기 엄마의 눈물 담긴 떨리는 목소리가 할머니에게 전해졌다.
할머니는 아기 엄마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웃으며 아기의 친구를 해 주셨다.
단 몇 분이지만 엄마는 따뜻한 국물을 목에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아이였을 때가 있었다.
도구를 사용하지 못해 손으로, 손보다는 엄마의 모유로 영양을 공급받던 시간들...
내 손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를 위해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해 먹어야 행위였다.
오늘 하루 어떻게 지나갔는지.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
잠깐이라도 쉬었는지.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어본다.
아이구...오늘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