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란 사람 2
폐경?
아직은 그 단어를 떠올리긴 이른 나이다.
하지만 내게 찍혀버린 낙인.
누구에게 어떤 말로 호소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게 남일 같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원이라는 곳은 내게 폐경이라는 공식적인 도장을 찍어 버렸다.
너무 빨라 건강에 문제가 된다는 조기폐경도 아니고, 제 때에 오는 폐경도 아니다.
그저 '이른' 폐경.
너무 빨리 오지 않아 기뻐해야 할지, 제 때에 오지 않아 슬퍼해야 할지 그저 헛웃음 짓게 만드는 이름, '이른'.
갑상선암 수술로 호르몬 기능 하나를 잃게 될 때도 죽는 병이 아니고, 착한 암이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받았는데, 이번에도 그저 좀 이른 것뿐이라고 안심을 시킨다.
그러면서도 여성호르몬이 이제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단다.
하지만 여성호르몬의 갑작스런 파업에도 워킹맘인 나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고, 아이는 엄마의 갱년기 따위는 관심도 없이 징징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청개구리처럼 하는 말마다 반대로 하고, 물음에도 대답은 없다. 말로 좀 하라고 하면 "대답했다고"라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귀도 노화가 되었는지 왜 내 귀에만 들리지 않는 것일까? 그저 주먹이 운다.
씻으라고 하면 귀찮다고 미루면서 여드름은 보기 싫은지 가리겠다고 앞머리를 길러 치렁치렁,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울화가 치민다.
엄마의 폐경 판정 소식(?)을 전해주자 아이는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소식으로 덮어버린다.
남들이 해주는 그 흔한 위로조차도 나의 아이에게는 받을 수가 없다.
이 아이도 지금 나처럼 낙인 하나를 찍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춘기'.
주위에서는 벌써? 라고 말하는 '이른' 사춘기다.
아이의 친구들은 아직인 것으로 보이지만 어쩌다 이 아이에게는 '이른' 병이 찾아왔을까.
엄마는 몸이 아프고, 아이는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 엄마는 몸의 이상을 느껴 병원이라도 찾아 진단이라도 받았지만 아이는 자기가 아픈 것도 모른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를 모르고 그저 증상만 있다. 그 증상이 다른 사람한테만 보이고 스스로 깨닫지 못하니 그저 짜증만 낼 뿐이다.
선배맘들의 경험을 거울삼아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며 몇 해 전부터 경고 아닌 경고를 해 왔지만 생각보다 미리 찾아온 '이른' 격돌에 마음도 몸도 피곤하기 이를 데가 없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분의 노래 가사가 절로 떠오르는 시점이다.
그나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니 '이른'이 부른 장점하나를 찾은 셈이지만 체력은 분명 한계다.
이제 남은 건 지치지 않는 마음일터, 내 마음과 아이의 마음 모두 꺾기지 않도록 마음의 체력을 유지해야겠다.
아,,, '이른' 겨울인 듯 춥다. 아직 가을도 다 못 느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