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뎌야 하는 무게

by 훈연

시작은 별것 아니었다.
그저 꿉꿉한 냄새. 오래 열지 않은 작은방 벽장에서 새어 나온 텁텁한 공기였다.


띵―동.
아래층 여사님이 올라오셨다.
작은방 벽장에 곰팡이가 폈는데, 우리 집 누수 때문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하셨다.

평소 아이들 때문에 늘 조심하고, 고맙게 여기던 분들이었다. 이런 문제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함께 방문했고, 육안으로는 뚜렷한 이상이 보이지 않았지만 냄새가 난다며 벽장을 헤집었다.
결국 아래쪽 구석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

직원들은 우리 집 욕실을 확인하고, 천장을 뜯고, 물을 틀어가며 원인을 찾기 바빴다. 그러다 한 층 위 집까지 올라갔고, 이틀에 걸친 확인 끝에 결론이 나왔다.


우리 윗집이었다.

9층 거실 쪽 욕실에서 물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 집 안방 욕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그 물이 다시 아래층까지 흘러 내려갔다는 설명이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기고,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사이 평일 저녁은 폭풍처럼 지나갔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집 안에 곰팡이가 있었는지도 몰랐고, 그 방에서 어린아이를 재웠다는 사실에 두려움과 죄책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아래층에서 말해주지 않았으면 한참을 더 모르고 살았을 거라는 생각에 나 자신의 부주의함이 책망스러웠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지.”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다행이다, 다행이다 되뇌었다.
일이 커지기 전에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윗집은 명확한 반응이 없었다. 원인까지 나왔는데도 보험 접수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아침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는 아래층 여사님 몫까지 내가 맡았다. 누수 탐사 업체를 알아보고, 윗집에 전화를 하고, 아는 보험설계사에게 연락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누수 탐사를 마친 사장님이 말했다.


“아랫집 누수의 원인은… 이 집입니다.”

“네? 우리 집이요?”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관리사무소의 설명과는 전혀 달랐다. 몇 번을 되물어도 대답은 같았다.

윗집에서 새는 물은 9층과 8층, 윗집 바닥과 우리 집 천장의 문제이고, 아랫집 벽장과 우리 집 벽장의 곰팡이는 8층과 7층의 문제 그러니까 우리 집 누수로 인한 문제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누수였다.

공동의 가해자를 향해 함께 분노하던 7층과 8층은, 다시 가해자와 피해자로 갈라져야 했다.


아랫집 여사님은, 처음엔 단호했다.
도배도, 장판도, 버린 옷가지까지 무르게 대처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자 어색한 웃음으로 말을 아끼셨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보험사에 전화했고, 빠른 처리를 약속했다.

우리 집 욕실 보수는 일요일에, 아래층 벽장은 월요일 확인 후 화요일 오전에 마무리됐다.
남은 건 의류 보상과 우리 집 벽장이었다.

의류 보상은 보험으로 가능하다고 했지만 절차는 까다로웠다. 곰팡이 냄새가 밴 옷, 몇 번이고 빨아 입다 결국 버리게 된 옷들, 그 냄새를 견디며 살아온 시간은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보험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요구했다.
곰팡이의 크기,
버린 옷의 개수,
가격.

이미 버린 옷은 제외,
곰팡이 전문 세탁은 제외,
세탁할 수 없는 옷은
냄새를 품은 채 보상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여사님, 번거로우시겠지만 의류 품목이랑 브랜드, 가격을 적어두시면 보상에 반영된대요.”


처음 통화는 부드러웠다.
100퍼센트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보상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여사님도 조금은 안심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현장 담당자는 달랐다.


“버린 옷은 안 되고요.
구매를 증명할 수 있는 내역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 샀는지도 기억 안 나는데요.”

“그래도 입증이 돼야 보상이 됩니다.”


절차는 이해했다.
돈을 쉽게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의 시간과 감정에 대한 배려와 이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말을 다시 아래층 여사님께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늘 “아이들이 뛸 수도 있죠” 하며 웃어주시던 분.

하지만 이번 일 앞에서 그 웃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높아졌고, 말은 빨라졌다.
보험사 욕을 하시며 담당자 번호를 받아 가셨다.

그다음은 예상한 대로였다.
여사님의 분노를 받아내느라 지쳐 있던 내게 보험사 직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더해졌다.


“대체 어떻게 전달하신 겁니까.”


나는 말해준 대로 전했을 뿐이었다. 그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며 서로 날선 말이 오갔고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오래된 아파트에서 누수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죄인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생길 수 있고, 잘 해결하면 된다는 나의 신념은
지금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다.
신속하게 움직였고, 상대를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사실, 나는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었다.

우리집 벽장의 곰팡이는 우리집 원인으로 생겼고, 몰랐기에 스트레스도 없었다.

아랫집처럼 곰팡이가 보이는 곳에 옷을 걸어두지도 않았고, 냄새 밴 옷을 아까워하며 몇 번이고 빨아보지도 않았고, 눈물로 비싼 옷을 버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희망을 건네고, 절차를 말해주는 역할은 내 몫이었다.

지난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딱 일주일. 윗집, 아랫집, 보험사, 누수 업체, 인테리어 업체, 지인들에게까지 수십 번의 전화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적으로 가장 고마웠던 사람과 어색해졌다. 아름다운 이미지만 남아 있던 여사님 대신 감정 노동 속에서 마주한 다른 얼굴이 기억에 남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이런 일을 겪고,
이걸 견뎌내는 게 어른의 몫일지도 모른다.

이제 내일 보험사에 서류를 넘기고 사인하는 것만 남았다.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는데, 내 마음은 아직 정산되지 않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마음을 안고도 하루를 버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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