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기저질환 있음. 폐렴.
내게 소중한 존재는 그 짧은 글로 규정됐다.
언제나 다정하고 따뜻한 우리 아빠가, 내비게이션보다 길을 더 잘 찾던 우리 아빠는 이제‘ 기저질환이 있는 70대 노인’이 되었다.
엄마의 칠순잔치를 무사히 마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잔치 분위기에 들떴던 일요일 낮. 환하게 웃던 엄마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빠.
모든 것이 거짓 같았다. 멀쩡했던 아빠는 하루아침에 호흡과 걸음, 모든 것에 문제가 생겼다.
시작은 첫째의 감기였다.
주말부터 열이 오르더니 엄마의 칠순을 마친 그날 밤, 체온계는 39.7을 찍었다.
독감이었다.
‘제발 둘째는 넘어가라.’
아직 어린 동생이 못내 걸려,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다음 날 둘째도 열이 올랐고, 그다음 날은 친정엄마가,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아빠 차례였다.
우리 가족을 휩쓸었던 독감은 종착역인 아빠에게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
어쩌면 내가 제발 넘어가라고 빌었어야 했던 대상은 둘째가 아니라 70대, 기저질환이 있는 우리 아빠였을 것이다.
특발성 폐질환, 섬유화.
아빠는 3년 전 폐질환을 진단받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채 폐가 굳어가는 병.
치료제는 없었고, 병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지연제만 처방받았다.
처음엔 어땠더라.
진단을 받고 슬프긴 했지만 아빠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셨고, 연세를 생각하면 병의 진행도 더딜 거라 위안했다. 정기검진 결과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래, 솔직히 말하면 무심했다.
점점 늙어가고, 점점 폐가 굳어가는 우리 아빠의 건강에 대해.
주말이 지나고 아빠가 힘들어 보인다는 친정엄마의 전화가 왔다.
“아빠가 열이 나. 식사를 거의 못하셔…”
늦은 밤 택시를 불러 노부부만 응급실로 보냈을 때도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응급실에 다녀온 뒤 아빠는 잠시 컨디션이 회복되셨다. 하지만 기운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거실에서 욕실로 가는 그 짧은 거리, 오십 걸음도 채 안 되는 그 길을 걷고도 아빠는 100미터를 전력질주한 사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어깨, 가슴, 배가 모두 들썩이는 숨.
그제야 아빠가 가진 병이 몸으로 와닿았다.
예전에도 감기는 여러 번 있었다.
아빠는 보통의 사람처럼 앓고 털어냈다.
하지만 독감은 달랐다.
그리고 독감 뒤에는 폐렴이 찾아왔다.
하루 만에 수척해진 아빠를 보며 가까이 살면서도 얼마나 무심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내 삶이 중요해서,
나를 이루는 삶에만 집중하느라
누군가의 딸이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았다.
그 뒤의 일들은 뻔했다.
119를 부르고,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서류를 떼고, 가까운 병원을 찾아다니며 검사, 또 검사.
휠체어에 탄 아빠의 모습은 낯설었고, 부족한 숨으로 “괜찮다”라고 말하는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왜 소중한 것은 잃어봐야 깨닫게 되는 걸까.
너무 당연해서, 내 곁에 항상 계실 거라 믿었던 우리 아빠.
멀리 사는 오빠는
닳아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맞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당연한 듯 내 곁의 행복을 누리고 산다.
언젠가 마주할 아빠의 마지막을
미리 보기 한 기분.
이 미리 보기가
내게 마지막 기회라고 말해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