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어려웠던 가정
상담사는 어디에도 털어놓은 적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해주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질 때 참 무서웠겠다고 공감해주었다. 오빠마저 집을 떠나서 외롭고 기댈 곳이 없었겠다고도 알아주었다.
그녀는 상담과정에서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을 상세히 떠올렸다.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그녀에게 주어진 환경이었고, 어디 하소연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기에 그저 체념하고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러나 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생각을 환기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더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었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성인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그녀에게 은연중 부담이 되어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늘 희생하고 아버지를 견뎌내느라 힘드셨던 불쌍한 엄마. 말이 안되는 환경에서 남매를 돌보고 지켜낸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녀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부족하다는 일종의 부채감이 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친정어머니에게 정서적으로 종속되고 경제적으로도 얽혀있는 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한살이라도 젊으실 때 각자의 자리를 찾아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깨달았다.
그녀의 가정안에서 진정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알콜의존이 심하셔서 진지한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술을 드시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셨고, 주로 억울해하시고 감정이 격해지셨다. 거의 매일 술을 드셨지만 간혹 술병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술을 드시지 않을 때는 거의 환자와 같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이런 상황에서도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에게 최악의 영향이 가지 않도록 다 막아내시느라 간신히 위태하게 버티고 계셨다. 어머니는 늘 피곤해 있으셨고, 삶의 피폐함 가운데 여유가 없으셨다. 일상은 어머니 덕분에 어떻게든 지켜졌지만,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거나 정서적인 지지를 주고 받기엔 삶의 파도가 너무 거셌다. 그렇게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그녀는 감히 그녀의 의견을 주장하거나 무언가를 따져 물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집 아이들은 사춘기 한 번 온 적이 없이 착하게 자랐다고 하셨지만,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사춘기마저 누르고 눌렀으리라.
세 살 위인 오빠랑은 성별도 다르고, 성향도 달라 어느정도 크면서는 그다지 소통할 일이 별로 없었다. 내향적이라 주로 집에 머물던 그녀에 비해 오빠는 외향이 강해 거의 밖으로 도는 편이었다. 그녀의 오빠는 그녀보다 나이도 많았고 힘으로나 지식으로나 늘 그녀보다 위였기에 그녀를 마냥 어리다고만 여기고 잘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잘 들어주지 않았고 네가 뭘 아냐면서 핀잔을 주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도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아끼고 예뻐해서 흔한 남매간 다툼에도 어린 동생을 때린 적도 없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표현은 매몰차게 나오곤 했다.
그녀는 이러한 가정에서 안정적인 소통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무언가 억울해도 참았고 자신만 조용히 하면 서운한 일들도 그냥 그렇게 덮어지고 괜찮은 것 같았다. 그녀의 입장을 말한다 한들 누구하나 귀기울여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것과 자신의 마음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체 감정과 생각을 뭍어두고 살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녀가 참고 잘 맞춰서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건강하게 마음속 이야기를 표현하는 법을 경험해본 적이 없으므로 자기표현에 있어서는 옹알이하는 아이 같이 서툴렀다.
이렇게 마음속 자신의 소리는 깊이 억누르고 참기만 하니 서운함과 억울함은 차올라 우울이나 분노가 자리잡기 쉬웠다. 억압적이었고 상호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던 원가정내에서 생긴 위축된 태도는 다른 조직에서도 그녀가 자신있게 발언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어렵게 만들었다. 가정에서의 관계가 사회로도 확대되어 알게 모르게 자연스러운 소통이 어려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