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입사...부담이 되다

by 마음작가

미국에 자리를 잡은 그녀의 오빠는 가끔 집에 안부를 물어올 뿐이었다. 부모님도 아들이 타국으로 떠나 그립고 아쉬운 듯 했지만, 한편 본인들의 못배운 한을 풀고 아들이 엘리트 미국인들과 경쟁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오빠는 아무 도움없이 미국에 건너가 높은 미국 물가에 맞춰 살아가느라 겨우 본인 사는 데만 급급했다.

오빠에 대한 바람마저 그녀에게로 옮겨져 그녀의 어깨는 더욱 무거웠으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그녀는 기를 쓰고 살아온 것이다.

처음에 대기업에 입사하고 회사에서 집으로 꽃바구니를 보내주었을 때 아버지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리셨다. 우리 딸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잔뜩 술취한 목소리로 흥분해서 외치셨다.

어머니도 딸이 큰 회사 다니면서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시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동안 어려운 형편에도 온힘을 다해 뒷바라지를 한 만큼 자식이 직장에 취직했으니 가계에도 보탬이 되어주길 은연중에 바라기도 하셨다.

그녀는 월급의 일부를 부모님께 생활비로 드렸고, 그녀의 오빠가 미국에서 아직 공부하느라 어렵던 시기에는 상당량의 예금을 헐어 송금해주기도 했다. 오빠는 나중에 안정되면 다시 갚아주리라 말했지만, 타국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그가 여유를 갖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언제일지 모를 그 날을 기다리기보다는 그냥 없어진 돈이라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이제 직장생활 연차도 늘어가는데 그녀도 자신이 많은 시간을 들여 일한 대가로 받은 돈을 잘 모아보고 싶었다. 자신의 계좌가 불어나 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때마다 집에는 돈이 필요할 일이 생겼다. 부모님이 아프셔서 목돈이 필요할 때도 있었고, 연로해지셔서 예전처럼 일하실 수 없는 부모님을 위해 집에 속해있는 대출을 대신 갚아드려야 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고생하신 부모님을 위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가족으로서 도울 수 있는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때는 그녀도 좀 의아했는데... 어머니께서 조금은 더 넓은 집에 살고 싶다고 집을 계약하시면서 부족한 돈을 그녀에게 부탁하신 것이다.


오빠도 없고, 소형평수이긴 해도 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는데, 굳이 무리를 해서 이사를 해야할까 싶었다. 하지만,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의 의사에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나중에 시집갈 때 다 돌려주겠다고 하셨지만, 지금도 연세 드셔서 소득이 줄어든 부모님이 무슨 수로 그 돈을 다시 마련해서 주실까?

그녀는 그렇게 또 그동안 모아둔 저축액을 전부 부모님이 새집을 사시는 데 보태도록 드렸다. 어머니는 미안해하시면서도 벌이가 일정하지 않은 아버지와 살면서 어머니도 안해본 일 없이 고생하며 살았기에 딸의 보탬을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로 여기셨다.


어머니 자신도 결혼전까지 번 돈은 어려운 친정 살림에 보탰었기에 자식이 성인이 되면 부모를 돕는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여기시는 듯 했다. 가족간에는 서로 돕는 것이라지만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나이도 앞자리가 바뀌었는데 그녀의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는 것 같다는 상실감과 앞으로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더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만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