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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세 Aug 22. 2024

Drowning man

Chap. 1 : 나는, Why, 왜

  정말이다. 이런 책은 거장들이 죽기 전에나 쓰는 건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아직 죽기 이른 나는, 거장 비슷한 존재도 못 된 나는, 거장이 된 다음에 죽기 직전에 이런 글을 써야지 미뤄뒀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앉아 있다.

  왜 나는 이런 글을 쓰게 되었나.

  우선은 이런 글이 뭔지부터 생각해 보자.

  이 글은, 책 몇 권과 공연 몇 편과 영상 관련한 글들을 쓰며 굶어 죽지 않고 버텨온 글쟁이가, 작가로서의 삶을 정리해 써 내려간 에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겸연쩍음이 흘러나온다. 내가 뭔데. 뭔데 내가 삶을 돌아보고, 글을 써온 과정을 남들 읽으라고 써 내리는데?

  읽긴 누가 읽겠냐만.

  이 나이-나는 1978년생이다-쯤 살아보니, 느껴지는 게 하나 있다. 인생은 여러 챕터들로 이뤄진 책과 같다는 거다. 대부분의 챕터는 계절과 같다. 가는지 오는지 모를 알쏭달쏭한 지점을 통과해 너도 나도 모르게 챕터 하나를 마치고, 다음 챕터에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하나의 챕터가 끝났다는 걸, 그 챕터를 떠나온 한참 뒤에야 겨우 안다.

  또한 돌아갈 수 없는 모퉁이를 접어들게 만드는 챕터도 존재한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내가 떠나거나, 인생 전체를 뒤바꿀 결심을 요구받거나, 그럴 결심을 악무는 상황들이, 챕터의 클라이맥스에 머문다.

  챕터들은 우리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분명한 마디일 것이다.

  그런 챕터들을 정돈해두고 싶었다. 그런 게 지난 챕터보다 이제 올 챕터가 적은, 늙어버린 나에겐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써오면서 살았다. 그걸 쓰게 만든 나만의 내적인 이유가 존재할 터였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좀 더 명확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쓰는 내내, 그것들은 명료해지리라. 쓰게 만든 이유들이 내 인생의 근원적인 지점이자, 나를 살게 했고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였다.

  써온 과정을 정돈하는 건, 앞으로 써 내려갈 삶을 좀 더 또렷하게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두어 달 내가 어떤 글을 쓸지를 안다. 하지만 그 뒤는 모른다. 글에 대한 오늘의 계획도 세워둘 뿐 그게 그대로 진행될지 또한 모른다. 작가라는 업의 수입은 예측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해나갈 작업이나마 예측하고 싶었다. 지난 글들과 그걸 써 내려간 내 삶을 돌아보면,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과 내가 써 내려갈 글들이 짐작될 것 같았다.

  대강이나마, 아련하게.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글을 쓰는 이중세입니다.

  이중세, Drowning man. 가라앉지 않으려 팔다리를 지치지 않고 휘젓고 있는 조막돌 같은 사람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분들께 내가 갔던 길에 대한 글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러나 어떻게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 창작에 뭔가 대단하고도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나 짐작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는 내가 살아왔던 길들을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대로 하라는 게 아니다. 내가 했던 모든 시행착오를 타산지석 삼아 더 나은 길을 걸으라 권유하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해 내가 유일하게 옳다 여기는 지점은, 양보하지 않는 가치는 단 하나다.

  잡스가 옳다.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오는 단순하고도 친밀한 기쁨이, 언제고 이 삶의 진짜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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