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ISO공부의 시작점

by 필순

정이도 심사원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사람이 별로라고 생각했다. 차가웠다.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고, 웃지도 않았고, 친절하지도 않았다. 질문은 짧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그날 회의실에서 들었던 첫 질문이 아직도 기억난다.


“왜 ISO를 하시려고 합니까?”


나는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출 때문이고, 요즘 AI는 인증이 필요하고, 회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걸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건 목적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거슬렸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 좀 까다로운데.’


그날 이후로 나는 정이도 심사원을 그냥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나는 다시 그를 만났다. 이번에는 교육장이었다. ISO 내부심사원 교육 첫날. 나는 여전히 이 교육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증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고, 형식적으로 듣고 지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이도 심사원이 강의실 앞에 섰다. 여전히 같은 표정이었다. 여전히 같은 말투였다. 둘째날도 마찬가지였다.

“시작하겠습니다.”


둘째날도 교육은 이어 졌지만 교재를 펼치지 않았다. 슬라이드도 바로 넘기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했다.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잠시 우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사고가 났을 때가 아닙니다.”


“사고가 나기 전인데 아무도 그걸 모를 때입니다.”


그 말은 처음 들었던 그 질문과 묘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날 교육도 첫째날과 마찬가지로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는 ISO를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조직을 어떻게 의심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내부심사는 점검이 아닙니다.”


“자기 조직을 의심하는 과정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불편해졌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회사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교육이 중반쯤 되었을 때, 누군가가 질문을 했다.


“그럼 내부심사원 교육만 받으면 심사원이 될 수 있는 건가요?”


정이도 심사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설명을 이어갔다.


“내부심사원은 조직 안에서 스스로를 점검하는 역할입니다.”


“자기 조직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하지만 심사원은 다릅니다.”


“외부에서 다른 조직을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책임이 완전히 다릅니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심사원이 되려면 단순히 교육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심사원보 과정을 거쳐야 하고, 실제 심사 경험과 평가가 필요합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심사원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했다.


“심사원보는 아직 완전한 심사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심사를 배우는 단계입니다.”


그는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규격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을 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깊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부심사원은 자기 조직을 이해하는 사람이고, 심사원보는 타인의 조직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ISO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느꼈다. 그리고 정이도 심사원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차갑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사람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신 필요한 말은 끝까지 설명해주는 사람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갔다. 나는 잠시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거… 제대로 해보고 싶다.’


그 순간이 어쩌면 내가 심사원이 되기로 결정한 진짜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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