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in SEOUL(#30 새벽의 떡집)

by 필순

청계천을 떠난 어린 왕자는 한참을 걸었다. 물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대신 골목의 공기가 가까워졌다. 서울의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지만, 밤과는 조금 다른 밝기였다. 조용해진 대신, 더 또렷해진 시간이었다. 멀리서 신문을 묶는 소리가 들렸고, 어딘가에서는 셔터가 천천히 올라가는 금속 소리가 났다.


끼이익—


어린 왕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서울은… 아직 자고 있는 게 아니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공기 속에 낯선 냄새가 섞였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조금은 고소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느슨해지는 냄새였다. 어린 왕자는 고개를 들었다.


“이 냄새는…”


그는 냄새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냄새는 더 짙어졌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따뜻한 김이 섞여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골목 끝. 작은 가게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하얀 김이 천천히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문 앞에 서서 가만히 안을 들여다봤다. 가게 안은 분주했다. 하얀 쌀가루가 묻은 작업대, 김이 올라오는 찜기, 그리고 손을 빠르게 움직이는 한 남자.

탁, 탁, 탁.

반죽을 다루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밖에서 냄새만 맡으면 더 배고파진다.”


어린 왕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어린 왕자를 흘끗 보며 말했다.


“들어와. 거기 서 있지 말고.”


어린 왕자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 공기는 완전히 달랐다. 따뜻했고, 촉촉했다. 김이 살짝 얼굴에 닿았다. 어린 왕자는 눈을 깜빡였다.


“여기는… 달라요.”


남자는 피식 웃었다.


“덥지? 불 켜놓고 일하니까 그래.”


그는 손을 털며 어린 왕자를 다시 쳐다봤다.


“너, 여기 애 아니지?”


어린 왕자는 하늘을 가르키며 말했다.


“여기 애에요 .”


“그래 보인다.”


남자는 피식 웃더니 다시 반죽을 만지기 시작했다. 어린 왕자는 김이 나는 찜기 쪽으로 다가갔다. 뚜껑 사이로 하얀 김이 계속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건 뭐예요?”


“떡.”


어린 왕자는 그 말을 따라 했다.


“떡…”


“쌀로 만드는 거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쌀이요?”


“응. 밥 먹는 그 쌀.”


어린 왕자는 눈을 크게 떴다.


“쌀이 이렇게 변해요?”


“사람 손 좀 타면 다 변한다.”


어린 왕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 이거 비슷한 거 먹어본 적 있어요.”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네. 빨간 거요.”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떡볶이 먹었네.”


어린 왕자는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에는 조금 놀랐어요.”


“왜?”


“맵더라고요.”


남자는 웃었다.


“그건 원래 맵다.”


어린 왕자는 손으로 입 주변을 살짝 만졌다.


“근데 계속 먹고 싶었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떡 식감 때문이야.”


“식감이요?”


“쫀득쫀득한 거.”


어린 왕자는 잠시 그 단어를 생각했다.


“쫀득…”


“씹으면 계속 느껴지는 거지.”


어린 왕자는 다시 찜기를 바라봤다.


“그럼 이건… 안 매운 거네요?”


“완전 다르다.”


남자는 찜기 뚜껑을 열었다.


훅—


하얀 김이 한꺼번에 퍼졌다.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어린 왕자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우와…”


남자는 작은 떡 하나를 집어 건넸다.


“이거 먹어봐.”


어린 왕자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손에 닿자마자 따뜻함이 전해졌다. 그는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멈췄다. 남자가 물었다.


“어때?”


어린 왕자는 천천히 말했다.


“…조용해요.”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맛이 조용하다고?”


“네. 크게 말하지 않아요.”


어린 왕자는 다시 한 입 먹었다.


“근데 계속 먹고 싶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기본 떡이다.”


어린 왕자는 손에 들린 떡을 바라봤다.


“이건… 오래 남아요.”


“배도 그렇고, 느낌도 그렇지.”


남자는 작업대 옆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떡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이건 좀 이따 나눠줄 거다.”


어린 왕자는 고개를 기울였다.


“나눠요?”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떡은 원래 그런 거야.”


“왜요?”


남자는 잠시 멈췄다.


“이건 혼자 먹으면 좀 심심하다.”


어린 왕자는 눈을 깜빡였다.


“심심해요?”


“같이 먹어야 맛이 산다.”


어린 왕자는 떡을 내려다봤다.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져요?”


“이상하게 그렇다.”


남자는 봉지를 꺼내 떡을 담기 시작했다.


탁, 탁.


리듬감 있게 담겼다.


“옆 가게도 주고,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주고…”


어린 왕자는 조용히 말했다.


“그럼 계속 돌아다니겠네요.”


남자가 손을 멈췄다.


“…돌아다닌다?”


“네. 여기서 만들어져서… 다른 사람한테 가고…”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그렇게 보니까 맞네.”


어린 왕자는 마지막 한 입을 먹었다.


“이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퍼지는 거네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퍼지는 거다.”


잠시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남자는 봉지 하나를 만들어 어린 왕자에게 건넸다.


“이건 네가 들고 가.”


어린 왕자는 놀란 얼굴로 받았다. 어린 왕자는 봉지를 꼭 쥐었다. 따뜻함이 손 안에 머물렀다. 남자가 말했다.


“근데 다 먹지 말고.”


어린 왕자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하나쯤은 누군가한테 줘라.”


어린 왕자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웃었다.


“그러면… 더 오래 남을 것 같아요.”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런 셈이지.”


밖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문 앞에 섰다. 김이 천천히 따라 나왔다. 그는 손을 내려다봤다. 봉지는 여전히 따뜻했다.


“이건… 손에서 금방 안 사라져요.”


남자는 말했다.


“금방 식는다.”


어린 왕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조금 남아요.”


남자는 잠시 어린 왕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그래. 그건 좀 남는다.”


어린 왕자는 웃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차가웠지만,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는 봉지를 조금 더 꼭 쥐었다.


“이건… 나눠야 더 남는 거구나.”


골목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문을 열고 있었고, 누군가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보다, 아주 조금 더 따뜻한 걸음으로.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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