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순이 Aug 20. 2024

일 저지르기 선수 2

플리마켓을 시작하다

세 번째로 저지른 일은 플리마켓에 나가서 내가 만든 물건을 팔아보는 것이었다. 직장인이었을 때 이런 플리마켓 행사가 주변에서 열리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구경했다. 물건을 만들어 파시는 분들, 공방을 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나도 언젠가 해보면 정말 재밌겠다고 버킷리스트에 적어두었었는데, 이번에 하면 좋을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적은 돈으로 시작해서 소소한 용돈이라도 벌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어떤 품목을 해볼까 고민하던 중에 어린 시절에 차고 넘치던 헤어액세서리가 떠올랐다. 고모가 선물을 많이 해줬었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주고 갔다는 거짓말에도 잘 속아 넘어갔던 순수했던 순간이, 나에겐 참 소중한 추억이었다. 그렇게 나는 순수했던 마음을 담아서 만든 다는 스토리를 적은 홍보리플릿도 만들어서, 성인용 헤어액세서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름 디자인 쪽에 일을 했었다고 안목이 높았는지 고르는 재료마다 값이 상당했다. 기본적으로 구매해야 할 재료도 정말 많았는데 이외 디자인을 많이 신경 쓰니 원단이 너무 비싸서 원가가 높아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프리미엄 급이라는 명목으로 조금 높은 가격에 팔기로 했다. 


일단 플리마켓에 참가하기 위해 온라인 카페들을 돌며 신청서를 넣었다. 매주 3일 정도 스케줄을 잡았고, 인스타로 브랜드를 홍보하며 1인 다역을 하기 시작했다. 손이 많이 가는 헤어핀을 만드는 바람에 하루 종일 만들어야 6개 정도 만들었다. 생산력이 낮지만 다행히 값이 높으니 돈벌이는 될 것 같았다. 라벨도 인쇄해서 악세사리에 붙이니 완전히 내 브랜드가 탄생했다. 이제 많이 팔기만 하면 됐다. 


플리마켓 판매는 내 예상보다 더 큰 수익을 가져다줬다. 적으면 하루에 30만 원 정도였지만 페스티벌에 참가하면 하루에 80만 원~100만 원까지 수익이 있었다. 매일 제품이 없어서 못 팔았다. 매일 만드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집에 방하나가 온통 헤어핀으로 가득했다. 만드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마음은 늘 즐거웠다. 단골손님도 늘어났다. 내가 참여하기만을 기다리고, 플리마켓을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서 찾아오시는 고객분들도 계셨다. 백화점 몇 군데에서 작게 입점하라고 또는, 팝업에 참여해 달라고 메일이 왔다. 솔직히 꿈같았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암투병을 하며 자신감이 저 밑바닥에 있었고, 이제 돈 버는 일은 끝났다며 자포자기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장사를 좀 할 줄 아나보다 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아이디어스에 작가로 입점해서 팔기도 했는데 그곳은 판매량보다는 홍보도구로 역할을 많이 해준 것 같다. 수수료 때문에 금액을 더 올려야 해서 구매량이 적었던 것 같다. 모델을 써서 제품 촬영까지 의뢰를 했기 때문에 수익이 크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집에서 만들다가 품목이 많아지자 감당이 안 됐다. 수량도 넉넉히 보관해야 하는 공간이 필요해서 상가를 운 좋게 1년만 계약을 하게 됐다. 나중에는 클래스도 여는 공방으로 키워야겠다는 목표를 갖고 열심히 작업했다. 그런데 점점 브랜드를 찾는 고객분들이 늘어나고, AS가 생기고, 혼자 운영하니 신경 쓸 것이 몇 배로 많아졌다. 하루종일 만들어도 주문량을 소화할 수가 없었고 플리마켓에 나갈 상품이 모자라서 참가일에 빠지는 날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직원이나 아르바이트를 둘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대량생산으로 외주를 주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핸드메이드라는 브랜드 성격에 맞지 않아서 계속 혼자 작업하는 수밖에 없었다.


플리마켓에 나가면 짐이 정말 많아서 나르다가 팔이 부었다. 겨드랑이 림프절을 다 떼어냈기 때문에 부종이 올 것이라고 했었고, 팔을 쓰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팔을 안쓸 수가 없는 상황이니 당연히 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되니 비수기가 찾아왔다. 추워서 야외 플리마켓 행사를 쉬는 곳이 많았고, 실내 플리마켓은 인기가 별로 없었다. 나도 휴식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방에 혼자서 매일 작업만 하니 외로움이 커졌다. 너무 잘돼도 문제고, 너무 안 돼도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비수기가 와서 수입이 없으니 생계가 걱정됐다. 그동안 발생했던 수익금은 대부분 브랜드에 다시 투자하는데 썼기 때문에, 남아있는 진단금으로 비수기를 버텨야 했다.


결국 고민 끝에 회사에 취업해서 고정급여를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공방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전 09화 일 저지르기 선수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