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질병에 걸려보니 이전에 적어두었던 버킷리스트가 눈에 아른거렸다. 치료 중이긴 하지만 퇴원도 했고, 혹시라도 재발이나 예상치 못한 다른 질병에 걸리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것 몇 개라도 이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중에는 돈이 좀 필요한 것들이 있었는데, 암 진단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치료받느라 고생한 나한테 주는 선물이었다.
첫 번째로 저지른 일은 지방으로 이사하는 것이었다. 전셋집에 만기일이 다가와서 이사를 해야 했는데, 서울에 살기가 싫었다. 녹지 환경이 있는 지방으로 이사를 하고 싶은데 신랑의 직장 때문에 그냥 내 꿈으로만 간직해야 했다. 그런데 신랑이 지방으로 이사해 보자고 한 것이다. 조용한 데서 살면서 나도 힐링시켜주고 싶고 자기도 힐링하고 싶다면서.
사실 신랑은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아버지랑 잘 안 맞아서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지내왔다. 새로운 회사, 지방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지방을 뒤지며 갖고 있는 돈으로 가능한 곳을 찾다가 세종시로 이사를 하게 됐다. 다들 지방에 간다더니 세종 시냐며 핀잔을 주었는데, 나로서는 아직 몸이 성하지 않아서 병원이 좀 있는 동네로 가야 하는 상황 때문에 시골까지는 못 들어갔다. 세종은 잘 정돈되어 있는 도시였다. 녹지도 꽤 잘 조성이 되어있고 동네도 조용했다. 부동산으로 시끌시끌한 것 같기는 한데 우리한테는 저렴하게 아파트에도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잘 맞는 곳이었다. 어느 지역을 놀러 다녀도 중간 지점이라서 마음에 들기도 했다.
서울집은 12평의 작은 빌라였기 때문에 신혼살림이 별로 없었다. 이사하기로 한 세종시 아파트는 25평의 넓은 집이어서 신혼집을 차리듯 살림살이를 늘렸다. 4인 소파도 장만하고 침대도 슈퍼싱글 두 개를 붙여서 넓게 만들었다. 정말 신이 났다. 신랑은 세종시에 있는 직장에 신입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신입으로 들어가는 게 좀 걸렸지만 이전과 전혀 다른 업무라서 어쩔 수 없었다. 채용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연고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삶의 터를 꾸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저지른 일은 캠핑이었다. 나는 벌레는 싫어하는데 나무가 흐드러진 자연 속에 있는 것과 바다 보는 것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캠핑을 하려면 갖가지 도구들을 사야 했다. 텐트, 의자부터 캠핑용 냄비까지 모든 장비를 캠핑용품 전문샵 한 곳에서 구매했다. 일주일정도를 매일 왔다 갔다 하며 사들이니 할인을 정말 많이 해주셨다. 최대한 비용을 적게 쓰려고 노력했는데도 구매목록이 워낙 많다 보니 3~4백만 원을 투자한 것 같다. 캠핑은 정말 돈이 많이 드는 취미다.
웬만한 장비를 다 갖추었으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신랑과 함께 다니고, 평일에는 나 혼자 다녔다. 처음에는 초보라서 텐트 치는데 하루종일 걸려서 현타가 왔다. 신랑은 캠핑 못 다니겠다며 투정을 부렸는데, 나는 힘들 때도 그냥 마냥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에 의미가 컸다. 점점 캠핑 고수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고, 그 과정들을 유튜브에 올렸다. 구독자도 어느덧 몇백 명이 될 정도로 꽤 재밌게 다녔다.
타들어가는 장작을 들어 올리며 이야 우와 하는 나의 모습이 내가 봐도 행복해 보였다. 캠핑 가서 신랑과 투닥거리며 싸우다가도 괜스레 웃음이 났다. 어렸을 적 소꿉놀이를 참 좋아했는데, 딱 그 느낌이 들었다. 고급지고 한 차원 높은 소꿉놀이랄까. 친구가 "여보~ 나 밥 좀 차려줘"라고 하면 "네 여보~"하면서 풀잎을 돌로 빻아 밥이라고 줬던 그때의 아기자기한 기억처럼 캠핑은 장난스럽고 귀여운 놀이였다. 해가 뜨기 전 아침 공기가 어쩜 그렇게 상쾌하고, 풀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는 어찌나 귀를 간지럽히는지 그 시간 모두가 힐링자체였다.
혼자 캠핑을 나가면 저녁 내내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모닥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렇게 있는 시간이, 다 떨어진 배터리가 충전이 되는 시간 같았다.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냐고 다들 물었는데, 그 무서움이 즐거웠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시는 분들 보면서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그렇게 보였으려나. 어차피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인데 무서울게 뭐 있냐는 식이었다. 암에 걸려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무모해보지도 못했을 거다.
캠핑을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1년이 금방 지나갔다.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보니 남은 진단금을 너무 많이 써버린 것이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서 캠핑 가는 횟수를 줄였다. 점점 캠핑 장비들은 집에서 먼지만 쌓이며 계속 놀고 있었다. 유행 타는 장비도 중고로 팔지 못할 지경이 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캠핑을 접기로 했다. 장비들을 중고로 팔 때마다 기분이 다운됐다. 아, 내 비싼 취미는 이렇게 저무는구나.
가끔 이전에 올려놓은 유튜브 영상을 보면 위안이 된다. 내가 저렇게 즐거웠구나. 좋아죽네. 혼잣말을 하며 보다 보면 어느덧 하루종일 영상을 다 뒤져 보고 있다. 아무래도 회상하는 것도 나의 행복 중 하나가 되니, 유튜브 영상을 올려놓길 참 잘한 것 같다.
여느 아침처럼 이번엔 뭘 해볼까 내 버킷리스트를 또 뒤져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