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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순이 Aug 21. 2024

대망의 림프부종

플리마켓을 하며 신랑한테 지속적으로 한말이 있었다. 

"나 이제 하고 싶은 거 다 해봤어. 혹시나 이 브랜드 접게 되면 일 더 안 벌리고 회사 다니면서 돈 벌 거야."

"그 몸에 무슨 회사야. 집에서 쉬어 그냥."

"일단 할 수 있는지 해보고 생각할래."


고정급여 때문에 회사를 다녀야겠다고 다짐한 건 맞지만 회사를 다녀도 되는 몸인지 나 또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일했던 분야인 편집디자인 회사는 야근을 일삼는 곳들이 대부분이었고, 야간수당도 없는 곳이 많았다. 그렇지만 진단금을 거의 써버린 상태에서 고정급여 없이 뭔가를 해볼 수도 없었고, 해보싶은 것도 없었다.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다는 떨림과 함께 소심해져 있는 마음이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단 최고로 착해 보이는 회사를 찾았다. 입사지원서를 넣고 에라 모르겠다며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입사지원한 000입니다. 확인해 보시고 연락 부탁드려요."

"아 네. 전달하겠습니다."


입사지원하고 전화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까. 황당했을 거다. 그래도 일단 나쁜 짓하는 건 아니니 얼른 확인해 달라고 말이나 해보자며 걸었던 전화였다. 전화는 다행히 잘한 것 같았다. 면접 보자는 연락이 바로 왔고, 즐겁게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다. 물론 암투병이라든지 별다른 얘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회사는 처음엔 다닐만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산더미처럼 불었다. 매일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집은 잠만 자러 오는 곳이었다. 회사에서는 직원을 더 채용할 의사가 없었고, 야근한다고 돌아오는 보상은 더 많은 일뿐이었다. 나는 회사를 8년 이상 다녀봤지만 이렇게 마감기일이 급하고, 잡일이 많은 회사는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있어서 일을 빨리 처리하는 편이었는데, 책임감 때문에 일을 끝내놓고 집에 가야 직성이 풀리는 게 단점이긴 했다. 미루어 놓고 가라고 해도 못 미루는 성격 때문에 야근을 더 했을 것이다. 이 빌어먹을 책임감. 


피곤해서 그런지 겨드랑이 곽청술 때문에 림프부종이 와서 팔이 점점 부었다. 매일 감고 자는 붕대 자국이 팔에 남아있어서, 회사에서 누구라도 팔이 왜 그러냐고 물을까 봐 눈치를 봤다. 림프 부종 때문이라고, 유방암 수술을 했었다고 말을 해서 좋을 게 없었다. 체력은 더 떨어졌고, 우울증까지 오는 기분이었다. 결국엔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나는 림프 부종 때문에 수술 후부터 팔에 붕대를 하고 살았다. 붕대를 오래 하면 알레르기 때문에 피부가 올라왔고, 그러면 하루이틀 쉬고 또 감고 반복하며 지내왔다. 붕대가 갑갑해서 자다가 울기도 했다. 곽청술만 아니었다면 하고 한탄을 해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었지만, 욕이라도 해가며 붕대를 칭칭 감아데야 속이 좀 나았다. 

"아우, 이놈에 붕대. 평생을 어떻게 이러고 살아. 그래 나만 빼고 다 잘 먹고 잘살아라."


세종에 이사 온 후로는 용인에 있는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곳에서는 사이즈를 재고 초음파를 보고 난 후

"팔이 많이 부었네요. 하루종일 붕대 잘 감고 계세요. 팔 쓰지 마시고요. 수술적 치료 방법도 있긴 한데 효과가 없어요."


매번 똑같은 대답이었다. 열 번 이상을 같은 얘기만 들으며 진료를 보니 진료비가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신랑이 다른 병원을 좀 알아보자는 제안을 했다. 


맞다. 한 병원에 의존해서 좋을 게 없다고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해놓고 또 한 병원에 의존을 해왔던 것이다. '림프부종'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인터넷 사방팔방을 뒤졌다. 몇 분의 유명한 의사분들을 알게 됐다. 바로 가능한 분으로 진료 날짜를 예약했고 부천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진행해 보자고 하셨고 수술을 권하셨다.


"초기에 오셨으면 정맥문합술정도만 해도 됐을 법도 한데, 지금은 많이 진행된 상태라서 사타구니에 있는 림프절을 떼어 겨드랑이에 이식하는 수술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잘하는 분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붕대를 평생 감아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붓기가 지금보다 좋아질 것은 확실해요."


붕대를 평생 감아야 하는 게 사실이라는 말에 우울하기도 했지만 붓기가 좋아질게 확실하다는 건 정말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동안 수술은 효과가 없다는 말만 듣다가 이런 말을 들으니 또 한 번 한 병원에 의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는 적극적으로 이곳저곳 알아보며 진료를 다녀봐야 하고, 지식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떠도는 자료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


수술은 하루종일 진행되는 수술이고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라서 국내에 잘하는 의사가 많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의사분을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지 싶었다. 제안해 준 신랑에게 고마웠고 알아본 나에게 칭찬한다. 이제 수술을 앞두고 있고, 그날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고 후에 부작용만 없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부작용이 생긴다면, 아휴. 내 팔짜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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