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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순이 Aug 21. 2024

에필로그, 찌그러진 자동차

동네 여성병원에서 준 진료의뢰서를 들고 분당서울대병원 유방외과 첫 진료를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주차장에 잘 세워뒀던 차를 빼다가 옆구리 문짝을 기둥에 박았다. 살짝 박았는데 울퉁불퉁 찌그러졌다. 박았으니 뒤로 빼서 다시 나와야 되는데 그냥 밀고 나왔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어이가 없었다. 박을 공간도 아니었고, 난 운전도 잘하는 편에 속했다. 아무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음이 틀림없었다. 


암이라는 것도 낯설고 대학병원도 낯설고, 그 북적북적한 대규모의 병원에 쭈뼛쭈뼛 들어가서 혼자 대단한 교수님 만난 것도 낯설었다. 아무렇지 않게 암치료 얘기를 하고 나와서 수납을 하다가,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울고 싶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못들은 체하고 차를 빼다가 이 사달이 난 것이다. 그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차까지 이렇게 되고 내 편이 없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주저앉고 싶었다. 그때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내 차는 이 연재글이 끝날 때까지도 찌그러져있다. 고치기 싫었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한쪽 가슴이 없이 2년이라는 세월을 지내왔다. 복원수술을 받아보지 않겠냐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는데 그쪽엔 마음이 없다. 없으면 없는 데로 사는 게 나답기도 했고, 그걸 또 일부러 만들어서 부작용 때문에 고생하는 것도 싫었다. 돈 쓰기도 아깝다. 이렇게 한쪽 가슴 없이 사는 게 편한 건 아니다. 수영장도 못 다니겠고 찜질방도 마찬가지, 헬스 PT를 받다가 선생님 앞에 내 브라 안에 있던 실리콘 가슴이 떨어진 적도 있다. 집에서는 아예 브라도 안 차고 있는데, 집에 누가 온다고 하면 오기 전에 얼른 가슴을 만들어 주는 게 귀찮아 죽겠다.


정신분석치료를 받은 후에 유방암이 걸려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병이 있으면 있는 데로 받아들이는 게 아주 조금은 수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물론 받아들이기 쉬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울의 늪에 오랫동안 빠져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잘 울어댔다. 정신치료를 받기 전에는 눈물을 많이 참고 살았는데 그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서 울고 싶을 때마다 펑펑 울어재꼈다. 신랑이 당황한 적이 많을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하다.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일 얘기만 해왔던 신랑과 나의 대화의 주된 이야기는 이제 치료에 관한 것들이고, 건강에 관련된 것들이다. 어딘가에 놀러 간다고 하면 나에게 불편한 건 없는지를 먼저 챙기고 있고, 영양제는 안 빠뜨렸나 진료날짜는 안 까먹었나 체크의 일상이다. 친구들과는 일상적인 이야기에 공감을 많이 못해서 연락도 많이 뜸해졌다. 일도 못하니 혼자 하루종일 이러고 글 쓰고 글 읽고 밥 먹고 자고 이게 다다. 지루할 때도 있다.


그런데 요즘 브런치스토리가 많은 재미를 준다. 글도 원하는 것만 골라서 맘 껏 읽을 수 있고, 내 글도 언제든지 올려서 반응도 확인하고. 확실히 조금이라도 반응이 있으니까 글 쓰는 게 더 재밌다. 소중한 댓글에 감사하며 답글을 달 때도 소통한다는 사실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어떻게 내 글을 보실까! 라이킷을 눌러주시다니! 신기한 날들이 벌써 한 달을 채워간다.


신랑이 차를 고치면 어떻겠냐고 한다. 창피하다고 투정을 부린다.

"나는 하나도 안 창피한데. 내 가슴도 복원해서 고치라고 하지 그래!?"

이러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화를 낸다. 괜한 동정심을 차에 투사해서 차만 저 꼬라지인가 싶다가도 곧 고치게 될까 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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