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후회가 내게 남긴 새로운 길
꽤 평탄하게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아왔다. 불안함을 채우기 위해 한 연습이 어찌 되었건 내 삶에 도움이 되긴 한 것이다. 원하는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 선생님들에게 예쁨 받는 전형적인 착하고 바른 아이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딱히 실패랄 것 없는 삶을 살던 나에게 처음으로 실패의 쓴맛을 느끼게 해 준 사건이 있었다. 원하던 대학에 떨어진 것이다. 예고에선 각 대학교별로 수업을 받는데 특히 내가 가고 싶었던 A 대학교는 전공뿐만 아니라 부전공도 하나를 선택해서 시험을 봐야 했고 성적 또한 높은 등급을 유지해야 하는 학교였다. A 대학교를 준비하며 실기와 내신 성적 모두 높은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A 대학교를 너무 가고 싶었던 이유는 이 학교의 춤 스타일을 너무 좋아했고 A 대학교의 무용단에 들어가는 것이 나의 꿈이자 미래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 대학교의 무용단에 들어가고 싶으면 꼭 이 대학교를 나와야만 했다. 그렇게 꿈꾸던 대학에 떨어지고 사실 전혀 생각 못 했던 지금의 대학교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첫 실패였다. 지금 돌아보면 실패라는 단어를 쓰기엔 너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 심경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교만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떨어졌다. 불합격 소식을 듣고 한 참이 지난 후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쳐 밀려왔다. 처음 느껴보는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감정이었다.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하루 이틀이 지나 어느덧 지금의 대학교에 합격 소식을 받아 대학교 1학년이 되어있었다. 학교생활에 감사하고자 굉장히 많이 애를 쓰며 생활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면 이렇게까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좋아하는 춤을 추며 다녔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냈다. 무엇보다 그 대학의 춤 스타일이 좋았고 무용단에 들어가는 것이 최종 목표이자 꿈이었기 때문에 한순간에 미래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방황의 시간이 찾아왔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문득 다른 걸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게 무용과라면 모두가 듣는 학기 중과 방학에 듣는 특강을 듣지 않고 그 시간을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경영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한때 복수전공으로 경영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예술경영 스터디 모임을 하며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원래도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공부해야 한다는 주의였지만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예술인들을 위한 지원 사업과 신청 방법 미국과 유럽의 예술인들을 위한 혜택 등 다양한 것들을 스터디 모임에서 알게 되었고 이때 논문을 참 많이 읽었다. 논문 하면 뭔가 읽고 싶지 않은 딱딱한 글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스터디를 하면서 일주일에 적어도 4편의 논문을 읽고 정리하며 논문은 마치 고농축 에센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종종 논문을 읽게 되었다. 스터디를 하며 신기했던 것은 생각보다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예술경영에 관심 두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했던 스터디 모임에서도 한 10명 정도가 있었는데 나만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이었다. 이를 통해 생각보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가기 전 마지막으로 배운 스피치 수업은 지금까지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앞에 나가서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진 요즘 어떻게 하면 말을 깔끔하고 정돈되게 전달할 수 있는지 배웠다. 그 외에 영어(정말 다양한 곳에서 수업받았다.), 연기, 모델, 필라테스 등을 배웠다. 어림잡아 4년 동안 방학과 학기 중에 배워본 것만 해도 7~8가지는 될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배우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새로운 배움을 주었고 생각보다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결국, 가장 힘들고 방황하던 시기는 수동적인 인간이었던 나를 능동적이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고 다양한 경험과 사람을 만나 소통할 기회를 준 셈이다. 그리고 가장 큰 기회는 바로 미국을 가겠다는 마음을 먹게 해 준 것이다. 학교에 별 흥미가 없는 김에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자는 마음이 들어 1학년이 끝나자마자 휴학을 신청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위에서 말했듯 나도 후회할 만한 일들도 실패라고 생각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더는 후회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회와 실패는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가장 큰 힘이다. 후회하고 실패했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도 살아가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의 대학교가 아닌 원래 가고 싶었던 대학에 들어갔다면 쭉 무용을 전공했을 것이고 나에겐 한 가지 길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떨어진 것을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다. 덕분에 그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길은 어디에든 존재한다. 관점만 바꿔도 여러분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믿길 바란다. 관점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그런데 이 종이 한 장 차이가 어찌나 바꾸기 어렵던지 나도 몇 년의 시간 끝에 이 종이 한 장을 뒤집었다. 그 과정은 정말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쓸데없는 과정은 없다. 모든 것들이 모여 여러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실패했다고 생각이 드는 당신에게 얘기해 주길 바란다. 덕분에 다른 길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