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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Aug 16. 2024

로봇에서 인간으로

질문 많고 상상하기 좋아하던 아이인 나는 중학교 1학년 예고 입시를 시작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이때엔 모든 일에 ‘왜’라는 말보단 그냥 했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것을 따라야만 했다. 하라는 데로 잘 따르는 사람이 잘하는 것이고 칭찬과 인정을 받는 그런 사회였다. 그러면서 점점 하라는 것에만 집중하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었다. 지금 돌아와서 그때를 생각하면 마치 로봇 같았다. 모든 게 해야만 한다는 말로 통일되어 버리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입시에 성공한 나는 예고에 들어갔다. 굉장히 예민하고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늘 불안 속에 살았다. 불안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은 방법이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연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아무도 하라고 한 적 없는 새벽 극기 훈련이 시작됐다.


아침 5시 30분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는 시간이다. 늘 5시에 일어나 기숙사 일 층에 있는 냉장고에 만들어 놓은 도시락을 꺼내 먹고 5시 25분 냉장고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으면 사감 선생님은 오늘도 일찍 나가느냐며 한마디를 건네셨다. 인사를 드리고 곧장 나와 식당을 거쳐 학교 무용실에 들어가 연습했다. 한 시간 정도 연습을 하고 곧장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한 시간 조금 넘게 공부하다 보면 친구들이 오고 종이 친다. 늘 나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했던 것이 후회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서 저렇게 살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지금 와서 알게 되었다. 정말 불안이 컸다는 것을, 불안한 그 마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는 것으로 채우며 살았던 내 모습을 말이다.  그 시절 친구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다. 


“어떻게 매일 새벽에 나와서 연습해?” 

“너희보다 부족한 게 많으니까... 그리고 불안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춤을 못 추지도 잘 추지도 않는 정말 평균에 속하는 아이였다. 대답에 이미 정답이 나와 있듯 불안함 때문이었다. 늘 시험 순서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연습했다. 틀릴까 봐 불안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한 것이다. 이 부분이 스스로에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동기가) 불안이라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만약 이유가 온전히 불안함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발전이라는 키워드에 맞춰져 있었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채워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헐떡이며 불안함을 채워간 시간이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 조금 더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이런 모습을 알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요즘 나를 만나면 사람 되었다는 말을 한다. 고등학교 때 내 모습이 마치 로봇 같았다는 친구들은 지금 나의 변화를 나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행복과 발전에 맞춰진 지금의 하루하루는 매우 편안하고 평화롭다. 고등학교 시절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았는지 불안이 컸는지 더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말했듯 안타까운 시간이다. 뭐든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간이 있었기에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도 모르고 그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목표가 너무 눈앞에 있는 것이었고 그러므로 한 번도 그다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가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모든 것이 짜여있다. 하나의 길만을 보게 하는 교육 방식이다.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뇌는 직선의 길만 존재하는 것으로 굳어진다.


나도 대학에 들어와 방황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지망 대학의 무용단에 들어가는 것이 최종 목표였는데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고 그 무용단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대학에 들어왔지만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 못 해봤던 나에겐 다시 새로운 목표를 정하기란 지금까지 지나왔던 직선의 길이 너무 굳어져 있었다. 대학이라는 목표를 이루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없는 빈 깡통 같은 매우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이 없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그다음 목표들을 정하며 나가야 하는지도 알려 주는 이 하나 없었다. 


그때부터 질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용을 왜 시작했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그럼 무용이라는 전공을 통해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등 하나씩 질문하고 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왜’를 좋아하던 질문 많은 아이가 돌아온 것이다.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때그때 답이 나오지도 않았다. 1~2년이 지나야 나오는 답들도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답을 찾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아주 사소하고 근본적인 것부터 질문하며 다시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 과정이 5년 정도 지나니 빈 깡통이었던 내가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다! 공허함의 원인은 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린 로봇처럼 하라는 대로 한 길만을 보며 그것도 아주 열심히 전력 질주로 뛰어왔다. 아주 수동적인 삶이었고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은 나의 내면에 온전히 집중하게 하였고 그를 통해 내 내면이 채워지는 경험을 했다. 내면이 채워지는 순간 조금씩 원하는 것이 보이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가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질문하고 답하는 이 과정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때론 화도 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는 게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 과정을 인내하고 계속해서 쌓아 간다면 비로소 채워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채워진 것 같다. 물론 아직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았지만 말이다. 앞으로 더 질문하며 채워가야 할 내가 있다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기대가 될 때가 많다. 또 어떤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지 새로운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지 말이다. 스스로 통찰과 질문을 통해 계속해서 생각의 방을 넓히고 자신을 채워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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