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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Aug 14. 2024

질문 많고 유난스러운 아이

어릴 적부터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아 ‘왜’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하는 아이였다. 나는 왜 이렇게 질문이 많은 것일까 생각하곤 했다. 모두가 알법한 드라마의 대사 중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말했을 뿐이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나도 똑같은 이유였다. 궁금하니까 궁금하다는 것인데...


어릴 적 했던 질문들은 사소하고 엉뚱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잘 기억나진 않는다. 언제부턴가 부모님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가 원하는 만큼 해주지 않으셨다. 아마도 지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난 자문자답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상상하고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상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되어 별의별 상상을 다 했던 것 같다. 아직도 부모님께서 얘기하시는 가장 엉뚱한 상상은 내가 육교를 건널 때마다 했던 이야기이다. 몸에 판판한 상자를 붙이고 팔을 비행기 자세로 펼쳐 바람이 많이 불어올 때 뛰어내리면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정말 그때 했던 생각이 굉장히 위험하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도 나를 보면 어릴 적 유별났다며 부모님께서 얘기하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질문 많고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무용을 전문적으로 전공하면서 질문 많고 호기심 많은 모습은 한동안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나 현재 다시금 호기심 많은 나로 돌아왔다. 이젠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내가 경험한 것들에서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바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 사고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스스로 유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에 조금이라도 감동하면 눈물이 났다. 감동이 조금이라도 된 무언가라며 그곳에서 한참을 못 빠져나오곤 했다.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감동으로 들떠있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야 비로소 그 감정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때론 이런 모습이 싫었다. 아니 힘들었다. 감정의 자극을 받는 순간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내가 그려지고 너무 별것 아닌 것에도 많은 에너지 소진과 생각의 공간을 내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김이나 작사가님의 『나를 숨 쉬게 하는 언어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자존감의 언어라는 차례에서 유난스러운 것은 나이기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특권이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유난스러움이 얼마나 특권인지 깨닫게 되었고 요즘 이 유난스러운 나의 감정 컨트롤 장애가 얼마나 축복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섬세하게 감정을 잘 느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게 어쩌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지 아닐까 싶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을진 모르지만, 내가 받은 감동을 통해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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