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부루마블]

by 서란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지금 나를 단단하게 서 있게 해주는 디딤돌 같은 것들.

내가 지금 두 발로 밟고 서 있는 땅 같은 것들.

그리고 내가 언젠가는 이루고픈 목표들의 모습.


그 목표를 향해 두 눈을 치켜뜨고 영차영차 내 다음 발판이 될 디딤돌들을 쌓다가 우연히 뒤를 돌아보니,

어느샌가 다 부서지고, 조각조각들이 깨진 디딤돌들의 모습이 보였다.


보드게임의 ‘한 칸 뒤로 가기’처럼 다시 한 칸 뒤로 가서 부서져 내린 곳들을 메꾸고 깨진 부분엔 꼭 맞는 조각들을 다시 채워놓고 싶었다.

징검다리처럼 건너려고 하던 순간에 갑자기 두려움이 찾아왔다.


‘이걸 고치느라 내가 뒤처지면 어떡하지?’


인생은 끝나지 않는 부루마블이니까.

‘한 칸 뒤로 가기’는 황금 열쇠 카드에서나 존재하는 거니까.

그 생각 하나가 내가 서있던 곳에서 그 한 발자국 내미는 걸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한 칸 뒤로 가기’ 대신 계속해서 주사위를 던지기로 했다.

1이 나오든 6이 나오든, 어쨌거나 내게 뒤로 가는 옵션은 없으니까.


미친 듯이 주사위를 굴리다가도 뒤를 돌아 위태롭게 부식되어 가는 디딤돌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이상했다.

난 분명히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겐 광활해 보이는 이 네모판을 이리저리 내 딴엔 열심히 여행했는데.


이젠 앞으로도, 뒤로도 갈 곳을 잃은 채 외딴섬 무인도에 발이 묶여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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