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거대한 해양플랜트를 설계하다.

진심과 열정을 다하다.

by 올라운더

두 번째 직장을 찾아 울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번째 회사라고 하지만 사실 신입공채로 재입사를 한 것이기에 회사 내에서 나의 포지션은 첫 번째 회사와 동일했다. 달라진 점이라면 첫 번째 회사에서 현장생산관리자 직무를 수행했다면, 두 번째 회사인 현대중공업에서는 설계 직무로 변경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첫 번째 회사와 다르게 대학원 진학에 대한 미련을 접어서였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회사 생활에 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극적으로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고 동기들과도 빠르게 친해졌다. 그렇게 한 달간의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사업부 배정을 받는 날이 돌아왔다. 당시 현대중공업의 경우 사업부 통합으로 신입사원을 뽑고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각 사업부에 인력을 배치하는 구조로 채용을 진행하였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대학교에서 전공했던 선박을 설계하는 직무를 하고 싶어 1 지망에는 조선사업부를, 2 지망에는 해양사업부를 지원하였다. 그런데 조선사업부를 지원한 인원이 많았던 탓인지 2 지망으로 선호했던 해양사업부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회사 내에서는 해양사업부가 미래 먹거리라는 슬로건을 내세울 정도로 해양플렌트 산업에 대한 기대가 높고 그만큼 수주 실적도 뛰어났었다. 비록 원하던 사업부는 아니었지만 유사한 업무를 하고 무엇보다 전문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설계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모든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앞으로 업무를 수행할 해양사업부 구조설계팀으로 부서 배치를 받아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나름 전공과목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고 자신이 있었지만 실제 업무는 생각과는 달랐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도면을 보는 법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대로 거대한 해양플랜트를 구조 설계하는 업무는 어려웠고 전문성뿐만 아니라 풍부한 현장 경험도 필요로 했다.


당시 해양 플랜트 사업이 호황기였던 터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평균 아침 8시 전에 출근하여 저녁 9~10시까지 회사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업무는 해양플랜트의 전체 구조물 설계 및 해석부터 현장에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설계에 반영하는 업무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


돌이켜 보면 단언컨대 맡은 업무에 진심과 열정을 다했다. 이대로 오랜 기간 설계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해양플랜트설계 분야에서는 전문가 반열에 오르고 커리어 측면에서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긴 업무시간에 힘들지만 밝은 미래가 기다릴 거란 생각으로 하루하루 참아가며 업무를 해나갔다.


4년 정도 해양 플랜트 구조설계 업무를 수행하면서 수많은 도면을 직접 그려보고 역학에 대해 공부를 해나가다 보니 나름 업무에 자신감이 붙었다. 20대 중후반을 일에 미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과 열정을 다해 설계 업무에 최선을 다했고 누구보다 해당 분야에서는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에 열정을 바쳐 지내던 중 생각지도 못한 외부 상황들이 펼쳐졌다. 연일 뉴스에서는 유가가 바닥을 치고 조선산업과 해양플렌트 산업이 끝 모를 추락을 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당황할 시간도 없이 해양플렌트 산업은 미래 유망산업에서 사양산업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해양플랜트 설계 업무를 시작한 지 4년 차에 접어들 때 즈음, 나는 한순간 미래 산업을 책임지던 산업의 역군 중 한 명에서 저물어 가는 사양산업에 속한 무기력한 직장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시작점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던 산업의 추락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회사 내부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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