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좌절을 맞이하다.

시작은 두렵고 어려웠지만 포기는 쉽고 빨랐다.

by 올라운더



주중에는 현장 생산관리 업무와 공부를 병행하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공부에 매진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 갔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3~4시간 정도였던 걸로 기억이 난다. 몸은 항상 피곤한 상태였고 언제라도 눈을 감으면 깊은 잠에 빠져들만한 컨디션이었다.


평소 건강은 누구보다 자신해 왔던 내 몸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끔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어떤 날에는 전신에 두드러기가 나고 입술과 몸에 부종이 생겼다.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두통과 가슴통증이 생겨 집중력이 떨어져 가는 걸 느꼈다.


그렇게 온전치 못한 컨디션으로 억지로 하루하루 버텨가다 수시 모집 전형이 시작되었고 정신없이 원서를 넣었다. 친한 친구 한 명이 내가 가려고 하는 의학대학원에 먼저 입학해 있던 터라 어느 정도 성적이면 합격할 수 있는지 미리 알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루틴으로 마지막까지 잘 버텨 낸다면 합격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지치지만 참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어느 날처럼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중 어머니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상기된 목소리로 "혹시 의학대학원 원서 넣었니?"라고 물으셨다. 당시 어머니도 내가 의사가 되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가끔 말씀하셨던 터라 회사 생활을 하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아들에게 응원을 보내주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응원의 메시지는 나만의 착각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몇 년간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비싼 등록금을 지원해 줄수도, 기나긴 수련의 생활을 응원해 줄 수도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무엇 때문에 반대를 하시는지 상세하게 묻지도 못하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계속 통화를 하다간 지금 까지 해왔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에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고 겨우 화장실로 달려가 화장실 한편에서 숨죽여 한참 동안 울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 뒤 주말이 되어 고향집으로 가서 현재 집안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집안 사업이 굉장히 어려워진 상황이어서 내가 계속 돈을 버는 게 유일한 방법이고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고 하셨다. 굉장히 오랜 시간 지금껏 듣지 못했던 집안 상황을 듣고 더 이상 공부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까지 몇 개월 남지 않은 상황으로 그만두기에는 아쉬움이 컸지만 나 혼자만을 생각해서 공부를 계속해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시작은 두렵고 어려웠지만 포기는 쉽고 빨랐다.


다시 거제도 기숙사로 돌아와 지금까지 공부했던 책들을 모두 버렸다. '지금 그만둬 버리면 미련이 없을까? 앞으로 후회로 남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고, 한 가지 선택을 하고 나면 후회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재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20대 중반이 된 청년은 두 번째 목표를 세웠고 또 한 번의 좌절을 맞이했다.

keyword
이전 05화다시 한번 목표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