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하다.
로봇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하고 커리어가 쌓여 갈 때 즈음 부서 내에서 중국 프로젝트 담당자가 필요했다.
당시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던 터라 중국 프로젝트는 담당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선임분이 퇴사를 하며 담당하고 있던 중국 프로젝트가 나에게 넘어왔다. 중국어도 잘하지 못하고 기본적으로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터라 프로젝트를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업무 자체는 설계 업무를 기본으로 했지만 고객사와 기술적으로 풀어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중국으로 출장을 가야 하는 상황도 다수 발생할 수 있는 고난도 프로젝트였다.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내게 주어진 업무는 힘들더라도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터라 중국 프로젝트를 담당하겠다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국내 프로젝트도 어느 정도 경험을 해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어만 다를 뿐 비슷하게 대응하면 문제가 안될 거라 생각했다. 몇 개월이 지난 뒤 그런 생각은 나의 자만이란 것을 깨달았다.
중국산업은 국내의 산업과 유사하지만 대응 측면에서는 완벽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업무 대응에 있어서 조금 더 협상력이 중요한 특징이 있었다. 메일을 통한 대응도 중요했지만 중국 고객사의 경우 실제로 만나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당시 해외에 나가본 경험도 몇 번 없었는데 중국 고객사가 부르면 비행기를 잡고 바로 중국으로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고 중국의 문화적인 이해가 전무했던 터라 첫 출장부터 수도 없는 우여곡절을 경험했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영업팀과 함께 움직이며 대응을 했어서 고객사 대응 시에 당황할만한 상황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영업의 영역까지 전담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어진 업무에 진심이었기 때문에 많은 업무가 내게 넘어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과중한 업무에 하루하루 지쳐 갔다.
그리고 중국 산업의 큰 특징 중 하나로는 관시 문화였다. 한국의 경우 집단에 의한 관계 형성이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면 중국의 경우 개인과 개인이 중심이 된 네트워크의 확장이 중심이 되는 특징이 있었다. 이런 관시 문화를 접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업무를 수행해 나가면서 적지 않은 난관을 경험했다. 특히, 기술적으로만 업무를 풀어내려고 하면 개인 간의 친밀한 관계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다수 경험했다.
또 한 가지 특징이라면 중국의 산업은 한 분야가 잘된다고 판단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해당 산업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내가 맡았던 분야인 디스플레이 산업만 보아도 처음 맡았던 고객사가 3군데 정도였는데 몇 년 사이에 유사한 회사들이 중국 정부의 주도하에 우후죽순 생겨 났다. 물론 관련 유사 회사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몇 년 사이에 유사한 회사들이 폭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위화감을 느꼈다.
중국 프로젝트를 전담하며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산업의 흐름과 특징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엔지니어 업무뿐만 아니라 기술영업 측면에서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