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업무를 담당하다.

기업들의 관계에 대한 생각의 확장을 경험하다.

by 올라운더

중국 프로젝트를 한창 수행하던 중 구매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로봇 설계 업무를 4년 정도 했을 무렵 회사는 어려움에 빠졌다. 로봇의 미래 성장성을 보고 중국업체들이 원가를 대폭 낮춘 로봇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해 나갔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로봇을 더 많이 구매하기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한국기업은 경쟁에서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다시 한번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원가 경쟁력이 필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로봇을 이루는 부품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있었던 설계 엔지니어를 구매부서에서 필요했고 , 나는 구매팀으로 장기파견을 가게 되었다.


구매 업무의 경우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들과는 성격자체가 다른 업무였다. 설계 업무는 개인이 로봇에 대해 학습해서 저렴하면서 성능 좋은 로봇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중점을 둔 업무였다. 이에 반해, 구매 업무의 경우 로봇을 구성하고 있는 부품들의 단가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회사와 협력업체가 상호 만족할 수 있을만한 해답을 찾아내야만 했다.


구매팀과 과거에도 여러 번 미팅을 통해 어떤 업무를 하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해당 업무를 직접 맡아서 진행해 보니 밖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었다. 기존 가격에 대한 어느 정도의 레퍼런스들이 존재했지만 중국 업체들이 생각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고객에게 제시하는 상황에서 이전 레퍼런스 가격을 참고하여 업무를 진행할 수는 없었다.


로봇을 이루는 전체 부품들에 대해 나열하여 부품 하나하나의 원가 분석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부품들은 원가를 낮추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일부 부품의 경우 원가를 낮출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부품의 도색 및 대체 가능 부품을 찾고 로봇 가격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해 냈다. 이렇게 몇 개월간 로봇의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협력업체와도 가격 조율을 해 나가며 중국 로봇의 가격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로봇의 가격을 낮추고 경쟁력을 갖출수록, 중국 로봇업체들도 그에 맞춰 가격을 낮추는 것이었다. 결국 한국 로봇업체와 중국 로봇업체 간의 기나긴 치킨게임 양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구매 업무를 진행하며 설계만 할 때는 몰랐던 회사와 협력업체, 그리고 대외 환경의 변화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보다 좀 더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회사는 필연적으로 언제나 대외 환경에서 경쟁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해당분야가 유망하고 발전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많은 경쟁업체들이 생기게 되고 결국 치킨게임 양상이 펼쳐지게 된다.


기술영업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구매 업무를 몇 개월간 맡아 진행하며 기존에 설계 업무만 할 때 미처 알지 못했던 기업들 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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