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우리동네 맛집탐방
전에 다니던 회사는 야근은 물론이고 숙직을 참 많이 했어요. 참 힘들었죠. 신삥들은 20일에 한번 정도 숙직을 한 것 같은데요. 좁은 숙직실에서 장정 두세 명이... 그중 한 명이 코를 골면 밤을 꼴딱 새야 하는, 참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암울한 시절이었지요. 회사 식당이 있었지만, 점심만 제공해서 저녁은 각자 해결해야 했는데요. 하지만 불문율처럼 퇴근하는 선배들이 저녁을 시켜주곤 했지요. 숙직실 전화기 옆에 현금 5천 원인가 1만원을 놓고 가는 '현금 박치기' 선배들도 있었고요.
첫 숙직을 하던 1985년 어느 날. 오토바이 헬멧을 쓴 아주머니 한 분이 들통을 들고 숙직실로 들어 오더군요. 그러더니 숙직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버너에들통을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콩나물과 깍두기를 가득 담은 접시에 공깃밥을 인원수대로 놓더라고요. 그 손놀림이 얼마나 화려하고 재빠르던지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는 것 같더군요. 서비스로 밥을 두 공기나놓고 가다니...저는 속으로 "뭐 대단하다고 밥을 두 공기씩이나. 저거 남기기면 아까운데"라고 생각했지만.그건 기우였죠.
두꺼비 부대찌개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들통 들고 오신 분은 주인아주머니셨고요. 그 속에는 한번 끓인 부대찌개가 가득 들어 있었지요. 늘 그렇지만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을 우리는 잊지 못하는 법이죠. 그리고 그 맛이 언제나 맛집의 기준이 되는 거고요.부대찌개는 말 그대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소시지와 햄에 김치, 두부 이것저것을 마구 섞어 끓인 것으로 그때는 '존슨 탕'이라고 했어요. 존슨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이것을드셔보고 너무 맛있어 반해서 존슨탕이라고 했다는 썰이 유령처럼 떠돌던 시절. 대부분의 국민이 배 고팠던 시절. 부대찌개는 상징적인 음식이었습니다.
암튼 숙직이 아니어도 그 후 두꺼비 집은 우리 회사 구내식당처럼 자주 이용하곤 했어요. 가금 주인 아주머니 묵인아래 짓구땡도 하고 그랬는데.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때 두꺼비 집은 부대찌개 말고도T본 스테이크 구이가 있었는데요. 커다란 프라이팬에 감자와 양파 그리고 스테이크를 넣고 그 위에 후추를 뿌리면 정말이지 남 부러울 게 없었죠. 잊을 수 없는 대단한 맛이었고, 그걸 안주로 소주를 먹으면 속이 든든해서인지 몇 병을 먹어도 취하지 않았거든요. 요즘에는 소시지와 햄구이가 메뉴판에 있던데요. 스테이크를 따라갈 수는 없지요.
우리가 보통 부대찌개 맛집하면 의정부 부대찌개나 송탄 김네집, 최네집을 거론하죠. 모두 두말할 필요 없는 맛집이 분명합니다. 요즘 수원에는 웨이팅만 30분이 넘는다는 '이나경송탄부대찌개'가 제일 핫하다고 하지만, '두꺼비 부대찌개'가 정통 부대찌개의 명맥을 유지하고 저는 확신합니다. 본점은 매산동, 매산초등학교 앞에 있는데 수원 시청옆 '두꺼비부대찌개'이오히려 낫다는 말도 나오곤 하는데요. 그건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추신- 두꺼비집에선 반찬으로 콩나물,김치와 함께 동치미를 주는데요. 그 맛은 40년전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아 갈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주인아주머니의 손맛을 자제분들이 훌륭하게 계승한 덕분이겠죠. 이제 고인이 되신 주인 아주머니. 하늘 나라에서 편하게 잘 지내시고 계시겠죠. 들통을 드시고 회사 안으로 성큼 성큼 들어오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