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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섭 Sep 06. 2024

진지한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 수건돌리기를 합니다

술래가 등 뒤를 뛰는 동안 기다리는 법을 배웁니다

오지 않을 수건을 기다리며

우리는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지요

그렇게 잠 속으로 가는 것이라 최면술사가 말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앞날을 본 적 없었습니다

다 옛일 같아 보이는 길 위에서

푸름과 퍼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파란 꽃을 찾아야 한다는데

메마른 땅이라 말해도 그 사람은 계속 찾습니다

좋은 눈을 가졌다고 그 사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안광을 뿜어내는 눈들과

그 사람이 한쪽으로 떠나가고

어디서 만났더라? 우리는 서로 묻지만

누구도 답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잊어갔습니다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혀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옛일입니다

이십 년 전 식목일에 심었던 오동나무가 있습니다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만우절이었던가

너무 오래된 옛일 속에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마른 가지를 잘라주고 우리는 잠시 앉아 쉽니다

바위들 틈에서 파란 꽃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미래가 밝아왔습니다

잠시 졸았던 것뿐인데

백발의 우리가 둘러앉아 있습니다 웃고 있습니다

떠나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도

우리를 기다리진 않습니다

엉덩이 뒤에 놓인 수건을 뒤늦게 발견하고 달립니다




<2023년 아토포스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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