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가 물렸다 어떤 조짐이라 여기며 걸었다
(앞서가는 구두 소리와 현재를 멈춰 세우며) 있잖아
(나무를 보려다 햇살을 보고 찡그린 표정으로) 응?
(배를 뒤집고 죽은 새를 발견할 때의 마음으로) 싫어
(악착같이 우는 매미 아래 서서) 뭐가?
(버스를 놓치고 난 뒤의 표정을 지으며) 모든 게
뒤돌아서면 정말 그만이었다 굳이 명명하지 않아도
끝이 걸어오고 있으니까
(가시덤불을 껴안는 상상 안에서) 근데
(물을 엎지르고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의 얼굴로) 응?
(가물가물한 기억을 꺼내려는 표정을 지으며) 모르겠어
(사방이 안개투성이인 아침을 목격했을 때처럼) 뭘?
(편지를 쓰다 구겨버리는 마음으로) 모든 걸
불어오던 바람은 잠시 침묵
(풀이할 수 없는 계산에 직면한 상태로) 그만 갈게
어깨가 비껴간다 원하는 방향으로
사라진다 찰나는 찰나일 뿐이니까 걸음만큼 멀어진다
<2023년 아토포스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