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을 꺼내려는데 단추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문도 모른 채로 아 예쁘다 했다
계산원에게 한주먹 내밀자 이게 뭐냐고 소리쳤다 아무리 뒤져도 멀쩡한 동전은 나오지 않고 주머니에도 지갑에도 온통 단추뿐이었다
물건을 사지 못하고 돌아오다가 단추가 잔뜩 열린 나무를 발견했다 작은 새가 열심히 쪼아먹기에 따라서 주섬주섬 모았다 어느새 두 손이 꽉 찼고
강변에도 풀숲에도 온통 단추들이 뒹굴었다 아이들은 모두 단추를 줍고 있었다 왜 그리 열심히 모으고 있니? 다가가 묻자 아이들은 번듯한 집을 만들 거라 했다
집에 돌아와 옷장을 여는데 단추가 떨어져 나간 옷들이 그득했다 놀라서 멀쩡한 옷을 찾아 마구 뒤적거렸다 빗소리가 들려왔고
창문을 여니 단추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심지에 불을 붙일 때처럼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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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 지나도록 하늘에서 단추가 쏟아졌다 휴교령이 내려졌고 창밖을 내다보아도 강가에는 더 이상 아이들이 없었다
바닥에 뒹구는 단추를 주워 골똘히 바라보았다 단춧구멍 속을 들여다보자 어떤 구멍 속은 비가 내리고 어떤 구멍 속은 나무들에 열매가 주렁주렁했다
과수원을 좀 더 살펴볼수록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고 풀벌레들의 즉흥곡이 이어졌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는 소란들이 모여 만드는
아름다움 다음에는 태풍이 이어졌다 도랑을 뒹구는 낙과와 죽어 나가는 나무들 썩는 냄새가 풍겼다 백구는 문드러진 단추를 핥아먹었다
단추 비가 내리던 단춧구멍 속에는 비가 더 거세졌다 비 냄새로 온통 가득해졌다 무덤처럼 단추들이 쌓여갈수록 잠기는 마을
어떤 단춧구멍 속을 보아도 결말은 결국 폐허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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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집을 만들 거라던 아이를 강가에서 다시 만났다 긴 시간이 지나간 후였다 훌쩍 자랐구나 말해도 아이는 대답 없이 쏟아지는 단추 비를 맞고 있었다 무릎까지 단추들이 차올랐다
단추가 없는 겉옷이 펄럭였다 아이의 곁에서 오는 바람을 다 맞았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세상은 점점 잠겨갔다 어쩌면 우리도 단추 속에 있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고 말할 수 있었다
<2024년 문학동네 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