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맨 뒷자리에는 늘 돼지가 앉아 있었다 커튼이 펄럭일 만큼 강한 바람 맞으며 웃는 돼지 딴짓을 하다가도 선생님이 물으면 답하는 돼지 느긋하게 쉬는 시간을 즐기는 돼지 울지 않는 돼지
돼지가 칠판을 지우러 앞으로 나간다 묵묵히 당번 역할을 하는 돼지 조용하지만 모르는 걸 물어보면 답해주는 친절한 돼지 하루는 돼지의 옆자리에 앉게 되어 물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창밖에 뭐가 있어? 돼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고 드디어 입을 연다 집에 우리 애들이 있거든 얼른 가서 돌봐야 하는데
조퇴를 하라 말해도 고개를 젓는 성실한 돼지
종례를 마치고 서둘러 나가는 돼지를 몰래 뒤따른다 돼지는 한눈을 팔지 않고 문구점에 들르지 않고 벤치에 앉아 쉬지 않고 친구 집에 가지 않고 묵묵히 집으로 간다 어느 대문 앞에서 돼지가 우편물을 챙겨 들어가고
담장 아래 숨어 훔쳐본다 돼지가 돌보는 돼지들이 있고 돼지들은 모두 온순하다 돼지들은 모두 청결하게 몸을 유지하고 돼지들은 큰소리를 내지 않고 돼지는 서로를 닮았다 돼지가 돼지 꿈을 꾸고 점점 많은 돼지가 그 집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