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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니 Aug 03. 2024

마지막 마라토너, 김현희

에세이

    

나는 가끔 그 애를 떠올릴 때가 있다. 이유는 미안함 때문이다. 미안한데, 시간을 되돌려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학급 반장을 했다. 그런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반장이 된 지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아침.

전교생이 운동장에 이열종대로 서 있었다. 교장의 훈화 말씀이 있기 전 교외수상자의 상장 수여가 있었다.

김현희.

이름 석 자가 또박또박 큰 소리로 호명됐다.

우리 반 아이였다. 키가 작고 뚱뚱했는데 공부는 꽤나 잘하는. 교장은 도 단위 과학실험대회에서 우수상을 따냈다며 수상자를 추켜세웠다. 와, 우와.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나도 조금 부러웠다. 소리 소문도 없이 언제 저런 걸.


일은 그 다음, 그 애가 상을 받고 학급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벌어졌다. 상을 받고 반으로 걸어 돌아오는 도중에 그 애가 꽈당, 하고 앞으로 넘어졌던 것이다. 누가 뒤에서 세게 밀치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꽈당!!!하고 말이다. 전교생에게 주목을 받는 일에 익숙지 않았고, 서둘러 학급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모양이었고,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돌아오려다 그만 다리가 꼬인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애가 넘어진 지점이 바로 내 앞이었다는 사실이다. 반장이니까 나는 학급 맨 앞에 나가 대표로 서 있었는데, 바로 그 앞에서 그 애가 꽈당, 하고……

     

일으켜주고 싶었다. 한 치의 거짓도 정말로 그랬다. 당연한 일 아닌가. 친구가 내 앞에서 넘어졌는데. 하지만 내 몸이 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일으켜주지 않고선.' 내가 말했다.

어떡해, 어떡하지. 나는 망설였다. 전교생이 보고 있는데, 그것도 여자애를. 애자애를 부축하거나 일으켜 세워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떡해?


'그래도 용기를 내서 일으켜 줘야지. 그래?' 내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엎어져 있던 그 애는 스스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얼굴을 홍당무가 돼 있었지만 표정은 담담했다. 몸을 일으킨 후 그 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몸을 털며 학급 대열 안으로 들어갔다.


조회가 끝나고 담임이 나를 불렀다.

"실망이다. 남자가 돼 가지고."

담임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화를 냈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어야만 했다. 어떤 변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     


그 애에게 미안했던 일은 또 있다.


오래전에 학교에서 체력장이란 것을 했는데, 마지막은 1킬로미터 오래 달리기였다. 운동장 다섯 바퀴.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 대열을 유지했다. 그보다 더 앞서갈 욕심도 없었다. 뭘 얻겠다고. 어차피 아등바등 쫓아가봤자 1등은 자신도 없었고 해서. 그렇다고 뒤처지기도 싫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는 먼저 도착한 애들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헉헉댔다. 그리고 그들처럼 아직도 운동장을 돌고 있는 후위그룹을 지켜봤다. 그들은 뛰다 서다를 반복하며 마지막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앉아서 그들을 보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마지막 대열까지 결승점을 통과하고 우리들의 달리기는 마무리됐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대열 중에 한 명이 멈추지 않고 한 바퀴를 더 뛰기 시작했다. 김현희였다. 마지막 대열에 있었지만 그 애는 한 바퀴를 덜 뛴 것이었다. 웅성거림이 들려온 건 그 애가 1/3 지점을 뛰고 있을 때였다. 간간이 사내 녀석들의 킥킥대는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그때까지도 웅성거림과 웃음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록을 체크하던 체육선생님께서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못해!"


그 애가 운동장 반 바퀴를 돌 때쯤, 그때야 웃음의 의미를 알았다.

녀석들의 눈길이 닿는 곳이 그곳이라는 것도.

나는 그전까지 그 애의 가슴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그냥 다른 애들에 비해 몸이 조금 뚱뚱하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 애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곳이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그 진동은 지면을 통해 내 엉덩이에까지 와 닿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애가 차라리 걸었으면 했다. 그럼 위아래로 출렁이지 않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계속 뛰었다. 그래도 나는 뛸 테다,라고 만천하에 증명이라고 하듯, 뛰었다. 묵묵히 뛰었다. 그 애의 달리기 속도는 걷는 속도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애는 분명 뛰고 있었다. 팔을 힘껏 높이 쳐들면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다. 나는 자기 앞에 남은 거리를 묵묵히 달리는 마지막 마라토너의 집념이 얼른 끝나기를 바랐다. 정말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왠지 미안했다. 이미 달리기를 마치고 바닥에 앉아 쉬면서 그 애를 지켜보는 일이. 하지만 그 애의 달리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제자리 뛰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 애는 여전히 맞은편을 달리고 있었다. 사내 녀석들은 계속해서 키득거렸다. 시간이 평소보다 몇 배나 느리게 흘렀다. 그 애의 발이 지면을 찰 때마다 점점 강한 진동이 내 몸을 관통해 지나갔다. 달리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일이 있고부터 사내 녀석들 사이에서 초대형 덜렁이라는 말이 돌았다.     


*     


지금도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으면 아주 가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한히 어두운 저 먼 공간에 타원형의 트랙이 그려지고, 어디선가 나타난 그 애가 트랙을 따라 달린다. 팔을 힘껏 높이 쳐들면서, 그래도 나는 뛴다,라는 것을 아직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듯한 매우 일정한 속도로. 영원히 떼어낼 수 없는 초대형 덜렁이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의문 하나를.


"그때 왜 너는 남은 한 바퀴를 굳이 뛰었니? 네가 한 바퀴를 덜 뛰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야. 오직 너만이 알고 있었는데. 혼자 남은 한 바퀴를 뛰어야 한다는 사실도 오직 너만이 알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초대형 덜렁이가 주체할 수 없이 위아래로 출렁거릴 거라는 사실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도대체 왜?"




김현희이라는 이름은 실명이다. 그녀가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기분 나빠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굳이 실명을 쓰는 이유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다. 숨기고 싶지 않아서. 물론 그녀의 의향은 묻지 않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그녀를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정류장 가장 저편에 서 있었고, 나는 맨 이편에 서 있었다(둘 사이는 꽤 먼 거리였다). 처음에는 그녀가 그녀인 줄 몰랐다. 더 이상 초대형덜렁이가 아니었고, 오히려 마른 편에 속했다. 하지만 분명 그녀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녀를 힐끔힐끔 계속 쳐다봤다. 그녀도 내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내가 나인줄 아는 눈치였다.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또 망설여졌다. 그러다 그녀가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고, 결국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인사를 건넸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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