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통령보다 그 사람이 더 무서워."
"너는 김건희 기사 쓰는 거 안 무섭니?"
"솔직히 건희 누나 기사 쓰는 거 무섭지. 나는 석열이 형보다 건희 누나가 더 무서워..."
부서 회의 마치고 일터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회사 동기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던 중 나왔던 말이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답했다. 분위기 풀어보자고 형, 누나 같은 호칭 써가면서 '농반진반'으로 답했다.
그러나 이 말은 진담이었다. 나는 대통령 비판 기사보다 영부인 지적하는 기사 쓸 때 표현에 더욱 공들였다. 또한 읽는 이의 관점에서 꼬투리 잡을 만한 부분이 있을까, 두 번 세 번 생각하면서 퇴고에 정성을 다했다.
기사 제목 지을 때도 고민이 하나 있었다. '김건희'라는 단어 뒤에 줄곧 '여사'라는 단어를 꼬박꼬박 붙이는 데 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명품가방 수수 의혹, 전당대회 개입 의혹과 같은 논란을 다뤘다.
그 내용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때마다 영부인 호칭을 붙여주는 게 맞느냐고 스스로에게 따졌다. 물론 다른 회사도 다 그렇게 하고 있었고, 어쨌거나 '살아 있는 권력'인 만큼 쫄려서 그냥 붙였다.
김건희 여사, 아니 이제는 김건희씨. 그에 대한 기사는 항상 높은 조회수와 상당수 댓글을 수반했다.
2023년 7월, 단신기사로 일주일에 2번 홈런을 쳤다.
하나는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돌연 영부인네 일가 땅이 있는 곳으로 노선이 바뀌었다는 의혹에 대한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영부인이 대통령 해외순방 따라 나섰을 때 현지에서 '명품쇼핑'에 나섰던 행보가 외국언론에 포착됐던 사안이었다.
평소 본인 기사에는 뉴스포털 댓글이 10개쯤 달린다. 많이 달리면 30개쯤. 그런데 두 기사는 각각 뉴스포털에 댓글이 수백 개, 수천 개가 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사 내용을 공유하고도 있었다.
단신기사라고 언급했다. 취재해서 특종을 낸 게 아니었다. 그냥 아침 라디오 인터뷰 전문기사를 읽는데 본인 눈썹 추켜세우는 부분이 있어 텍스트로 옮겼을 뿐이었다. 근데 시민들 반응이 뜨거웠다.
신기했던 건 다른 언론사들이 해당 기사에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는 거다. 특히 조회수, 댓글에 열광하는 인터넷 매체들은 더더욱 '입꾹닫'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튀어나온 못'이 됐다는 불안감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그쪽 공장 내부 사정이야 모른다. 현장 기자(실무자)들이 글을 작성했으나 윗선(데스크)에서 기사를 지웠을 수도 있을 거고. 현장 기자들이 스스로 '이 기사는 쓰기에 좀 위험하다' 싶어 스스로 자기검열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윤석열 시대에서 상당수 정치뉴스는 딱히 '알 권리'를 내세우지 않는 듯한, 특히 영부인의 의혹과 관련한 내용에서만큼은 아~주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흔히 '윤석열 정권'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뉴스 다루면서 '윤건희 정권'이 아닌가 의심을 많이 했다.
윤 정권이 무너진 것도 윤석열이 아닌 김건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 단초가 되는 사건...
꼽아보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중 내가 주목하는 건 2023년 7월 발생한 채해병 순직사고와 그에 따른 수사 외압 의혹이다. 경험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대통령씩이나 되는 사람이 고작 2스타 살려 보겠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 건 의아했다. 보수 측 집토끼로 분류되는 해병대 예비역들과도 척을 졌다.
나중에 청문회에서 밝혀진 사실. 그 수사 외압 의혹 중심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핵심인물이 있었다. 관련자 중 오로지 영부인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처벌을 받은 사건이다. 영부인이 과연 몰랐을까?
이외에도 영부인 관련 의혹은 한 트럭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 명품가방 수수 사건, 정치 브로커가 연루된 총선 개입 논란 등. 흔히 대통령을 'V1'이라고 표현한다는데 정치권에서는 용산에 'V0'가 있다는 이야기가 횡행했다. 대통령실에 '여사 라인'이 있다는 전언도 있었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혐의 등으로 처벌받은 최순실씨가 억울해할 만하겠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아무튼, 이 정권에서는 영부인에 대한 별의별 이야기가 저잣거리를 떠돌았다. 호사가들의 지나가는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심각했던 사안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석열이 형보다 건희 누나가 더 무서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뱀다리를 덧붙이자면, 내게 "김건희 기사 쓰는 거 안 무섭냐"고 물었던 동기는 12.3 비상계엄 및 윤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이쪽 업계에 남을 생각은 없단다.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