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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시대의 정치부 기자 2

히틀러가 정적 제거에 고작 3달 걸렸다는데...

by 방구석 특파원



1.


히틀러 이야기를 접한 적 있다. 그는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총통 자리에 취임한 뒤, 긴급명령 등으로 의회를 해산했다. 이내 공산당/사회민주당/평화주의세력 등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이 고작 3개월 만에 완성됐다고 한다.


윤석열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2일.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파면 선고를 내렸다. 근데 이 날짜를 계산하다 보니 문득 '계엄이 만약 성공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발칙한 또는 끔찍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일단 <윤석열 시대의 정치부 기자> 같은 글들은 써낼 엄두도 못 냈겠다. 국가 지도자가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거나 "일거에 척결" 등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나중에는 '수거' '영현백' 같은 오싹한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다.


계엄이 성공했으면 여기 '버거보살' 수첩에 적혔던 사람들은 다 잡혀갔겠다. 전직 대통령, 현직 야당 대표, 전직 대법원장/대법관, 현직 부장판사, 유력 언론인 등등. 심지어 축구로 애국한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 같은 사람들도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몰렸을지도 모른다.


그다음 차례는 언론인/종교인/노동자 등에 대한 광범위한 단속이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자유언론 40년"을 기치로 삼고 윤석열과 사사건건 대립해 온 MBC는 100% 공중분해됐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 야당 당원들이라거나 진보 성향의 유튜버들, 본인 같은 사람들까지 '줄빠따' 사정권이었을 듯하다. 히틀러가 정적 제거에 90일쯤 걸렸다니까, 아마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120여일이 지난 지금쯤 나는 "윤카 만세" "건카 수호"를 외치고 있었겠다. 22대 총선은 부정선거라고도 스스로 합리화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대 독립운동가분들의 삶을 접할 때마다 '나는 고문 2초도 못 버텼다. 무조건 투항했다'고 스스로 여기는 소시민이라.





2.


윤석열 전 대통령, 대통령 안 했으면 어땠을까. 아니 정계에 입문 자체를 안 했으면 어땠을까.


본인도 검찰총장 퇴임 이후, 연금 받으며 좋아하는 술 먹으며 지냈겠다. 시간도 많았을 테니 유튜브도 더 많이 봤을 거다. 유튜브 채널을 아예 파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검찰총장 출신에 변호사 자격증도 있으니.


정치권 호사가들 이야기다.


윤 전 대통령이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면 자기 사람 참 잘 챙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특히 술 잘 마시는 사람은 호형호제하면서 그렇게 아꼈다고. 술자리가 3차쯤으로 무르익으면 본인 자택(아크로비스타)로 초대해 무슨 산삼주인가? 그런 것까지도 꺼낸다고 한다. 그러고 다음 날에는 해장국 끓여 대접한다는 이른바 '썰'을 들었다.


나 같은 사람들마저도 혹하게 만드는 일화인 것이다. 정치만 안 했더라면 그냥 우리 주변에 있는 약간 고지식한데 술 잘 사주는 형인 것이다. 더구나 검찰총장 출신이라니 '썰' 들을 것도 많다. 일단 나부터 술 한잔 사달라고 졸랐겠다.


그러나 그는 정계에 입문했고, 나는 그의 시대에서 정치뉴스 다루면서, 교과서에서 배웠던 언론의 '권력 감시' 같은 건 뱃심이 좋아야 할 수 있다는 걸 절감했다. 나는 그럴 만한 기개가 없었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 건 체면 빠진다고 생각했지만 바람이 불면 버티기보다는 그냥 눕는 게 낫지 않냐는 사람이라.


이 일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윤석열 정권에서 기자초년병 시절을 보냈다는 건 내 인생 가치관에 큰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통제되지 않는 국가 권력을 맞닥뜨렸다는 것, 수사기관이 대놓고 '강강약약' 행태를 보여도 어떻게 저지할 수 없다는 것,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국가 정책 담당자들이 실은 국익보다 사익에 더 관심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언론은 권력 감시보다 공생을 선택할 때 더욱 많은 혜택을 누린다는 것 등등.


이 정권에서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나는 국가 시스템이라는 게 3년 가까이 교과서와 딴판으로 굴러가도 괜찮다는 걸 목격한 산 증인이다. 물론 정치/경제/외교 등 국정 전반에서 삐그덕 대는 소리가 났지만 어쨌거나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굴러갔다. 그동안 '이딴 게 나라?'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후진국이었으면 그런 놀라움도 없었을 거다.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고 이제 세계 중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아닌가. 국가 시스템이 이따위로 돌아가는 걸 국회, 정부서울청사, 헌법재판소를 오가며 1열에서 직관했다.


원래도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반골기질이 없지 않다고도 스스로 여긴다. 다만, 윤석열 시대를 겪으며 본인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더욱더 비뚤어졌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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