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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영 Dec 20. 2024

11. OH MY GOD

일상의 깊이

 ‘충격실화’라는 수식어를 단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요즘, 나는 그러한 일들에 익숙해져 아무런 동요가 없는 나의 모습에 놀라곤 한다. 자극에 절여진 것인지, 아니면 그 이야기들보다 더 세상이 추악해진 것인지는 나의 변질된 뇌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점점 더 실체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유에 대한 본연의 갈망이나 인간의 내면 속 깊이 잠재해 있던 ‘악’ 그 자체는 잠을 깨고 수면 위에서 물을 뿜으며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악’이 악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개인적인 측면이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물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중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자신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의 전염성. 이것이 가장 위험하고 가장 악독한 ‘악’의 특성이다.


 ‘악’은 전염된다. 마치 숲을 태우는 불씨와 같다. 처음엔 작은 불꽃에 불과하지만, 바람을 타고 나뭇잎 하나에 옮겨 붙으면 삽시간에 숲 전체를 집어삼킨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작은 틈이 생기면 그 틈새로 불길이 스며들어 점차 커져간다. 불씨가 커질수록 그 열기에 주변의 이성도 말라붙고, 공포와 분노의 연기가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한순간의 방심이 숲 전체를 불태운다. 그리고 그 한순간, 그 작은 틈은 인생의 여러 위험 가운데에 필연적으로 생성된다.


사람이 가장 위험할 때는 정신적으로 취약해질 때이다. 이별을 한 직후,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 떨어졌을 때, 빚이 생겼을 때, 폭력에 시달릴 때. 그럴 때 인간은 실낱같은 자신의 편을 죽을힘으로 붙들게 된다. 이때 붙드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저항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런저런 것들을 따질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현재 상태로서는 유일한 나의 편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신천지교도와 사이비가 이렇게 생겨나며, 도박장이 이것으로 먹고살고, 수많은 마약과 사채가 이때를 노려 아무 저항 없이 그들에게로 투입된다. 처음 이 주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로는 이들이 알아서 이성의 눈과 귀를 닫고 그 썩은 동아줄을 붙들어맨다. 그리고 곧 줄은 끊어지고 그들은 지옥으로 추락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악’은 전염된다. 포교를 하고, 돈놀음에 끌어들이며, 약을 권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악’ 임을 알지만, 무섭도록 잔인한 사실은 이것이 ‘선’이라 착각하는 사람들도 조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바른 종교는 이런 의미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한다. 올바른 종교는 우선 ‘선’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종교는 보편적 윤리를 확산한다. 사랑, 자비, 정의, 평화와 같은 보편적 윤리를 강조하며 올바른 종교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게 한다. 이런 윤리적 삶의 방식이 사회 전체의 선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종교의 신념과 실천이 선으로 간주된다.


 둘째로 종교는 사람들에게 "죄와 벌"의 개념을 통해 도덕적 책임을 자각하게 한다. 예를 들어, 나쁜 행동을 하게 되면 죄책감을 느끼고, 선한 행동을 통해 속죄하려는 태도를 갖게 한다. 이러한 과정이 선을 실천하는 동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종교인이기 때문이다. 전부터 이야기해 왔지만 교회를 다니는 나로서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결국 앞선 두 이유를 초월하는 종교의 본질, 진정한 믿음과 이를 뒷받침하는 영적인 체험이 이것이 ‘선’ 임을 확증한다. 어쨌든 ‘선’한 올바른 종교는 빈틈이 생긴 이들을 ‘악’의 유혹에서 구제한다. 정신적으로 취약해지는 것을 그 이후부터 예방해 줄뿐더러 무엇이든 잡으려 하는 이들에게는 건강한 동아줄을 내려준다. 나도 죽어보지 않아 이 동아줄의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종교라는 건강한 정신적 치유는 스트레스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은 동의한다. 물론 그 결론은 종교가 아닌 신앙에 도달한다. 삶의 영위를 위함이 아닌 믿음으로의 변경. 뭐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다시 보면,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삶의 질을 몇 단계나 높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한가로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의 현재도, 교회와 신앙이 만든 것임에 온전한 동의를 표한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악’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고의 방법. 어떤 이는 유일하다고 주장하는 방법. 세상의 절반 이상이 채택하는 이 종교는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무시보다는 연구를 택했다. 연구는 증명으로, 증명은 의심으로, 의심은 믿음으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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