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한밤중이었어요
여러 개의 얼굴이 있는 밤이었어요
밤과 밤사이에 잠이 숨어 있어
잠을 꺼낼 수가 없었어요
새벽으로 가는 디딤돌을 찾느라
침상을 다 헤집어도 잠이 안 보였어요
잠은 왜 보호색을 칠했을까요
잠도 잠이 달아난 밤이 두려웠을까요
적막을 이길 친절한 동행이 필요했나 봐요
나는 잠을 달래야만 했어요
밤의 매듭을 풀면 떠나지 못한 어제가
내일을 조립하는 오늘을 비웃었어요
불투명한 유리창 뒤로 감춰진 나와
행로를 이탈한 나를 보는 건
타인으로 묶인 잠들지 않는 겨울이에요
뾰족해진 밤이 수평을 집어삼켜서
나는 어둠 속 배경으로 존재하는
잠의 불안을 만지며 서성였어요
잠은 롤러코스터를 원치 않았을 거예요
잠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야겠어요
회전목마가 남긴 환한 웃음을 생각할게요
오르락내리락 천천히 눈을 맞출게요
잔잔해진 파문에 밤이 밤을 깔고 누웠어요
바람이 멈추고 출구가 보여요
생소한 내가 익숙한 나로 돌아와요
잠이 나란해진 나를 돌아봐요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거라며
빛을 여닫는 잠의 블라인드를 따라
걷을 수 있는 어둠이라고
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