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지금은 봄비

2024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by 강신명


흩어졌다 모이는 저녁으로 봄은 시작되는 거야 빨강과 파랑이 섞일 때 오래 기다린 너로 스며드는 거야 세상은 온통 보랏빛 파문, 보라의 눈 속엔 무수히 많은 빛이 살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은 나만의 별이 양각되는 계절, 단 하나의 별자리로부터 아지랑이가 몰려들 때면 서쪽 창문에 걸린 수많은 행성 중 어떤 걸음이 나를 알아볼까


태동에 흔들리는 지상의 소리들이 한 편의 서사시를 완성하는 것은 탐욕이 아니야 홀씨처럼 번지는 질문은 바람을 잠재우고 나는 어제를 건너온 몸을 씻어 내는 거야 거울 앞에 서면 누구나 봄이 되어 진홍빛 입술로 가지고 싶은 너를 빚고 있는 거야 모래성으로 쌓인 기억은 용서가 필요해 허기가 하루를 지배하면 허상이 눈앞을 가렸고 빛나는 미래는 늘 꼬리 감춘 뱀같이 윤곽만 희미하게 보일 뿐 손을 뻗으면 연기처럼 사라졌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고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우연이 필연이 되는 날, 땅의 모든 꽃이 졌다 너의 가슴속에서 다시 눈물로 피어나는 거야 거센 비바람 앞에 마주 설 수 있음은 이미 햇볕이 움트는 표정을 알기 때문, 물방울이 감싸 안은 무수한 음표는 복제된 통점의 실마리를 푸는 악보인 거야


명랑하게 나를 연주하는 천상의 아카펠라,

너라는 우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