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TV가 없었을 때 마을에 영화 상영을 가끔 했었는데 왜 그리 모든 영화가 귀신영화였는지 모르겠다. 밤에 하얀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나거나, 무덤 속에서 손이 나오거나 하면 "어머나! 꺄아악!"하고 소리 지르면서도 모두 또 보러 가곤 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MBTI 성격유형에서 감각형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정보를 파악하기에 현실적이지만, 직관형은 오감이 아니라 본인의 감을 보태어 육감으로 받아들이기에 자신의 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두 유형은 상황과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똑같이 무서운 영화를 보았더라도 감각형은 현실에서 직접 귀신을 보지 않았기에 덜 무서워하지만, 직관형은 상상의 세계를 의식하기에 그렇게 귀신이 무섭게 느껴진다.
직관형인 나는 귀신을 무서워해도 너무 무서워했다. 집에 혼자 있지를 못했다. 귀신이 창문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밤에는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화장실을 가는 것이 편하진 않았다. 강해 보이는 내가 이렇다 하면 믿지를 않는다. 내 친구는 이런 나를 알기에 “귀신 있으면 한번 보고 싶다.”며 나를 놀린다. 부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신은 참으로 공평하다. 감각형인 이 친구는 고소공포증이 엄청 심하다. 난 고소공포증은 없는데… 휴.
이런 내가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바뀌게 되었다. '귀신이란 내 생각에 있을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리 쉽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늦게 들어와도 혼자서 저녁 먹고, 씻고, 책을 보고 혼자서 잠도 잔다. 예전이었더라면 언니네 집에 가 있었을 것이다. 변한 건 하나도 없는데 단지 생각하나 바꿔먹었을 뿐이다. ‘귀신은 나의 생각일 뿐이기에 절대 나타나지 못한다’
사극 드라마에서 선비가 양반다리를 하고 몸을 흔들흔들하며 ‘하늘천 땅지 검을현 누를황’ 글공부를 한다. 이처럼 나도 늘 흔들흔들하며 공부했다. 아부지는 어릴 적 당신께서 들로 산으로 일하러 다니실 때 서당에서 글공부하는 친구들이 몹시 부러우셨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내가 공부하면서 몸을 흔들흔들하면 그걸 참 예뻐하셨다. 아마 이 때문이지 않았을까? 나의 건들건들하던 습관이.
40년을 살면서도 ‘내가 건들건들하는구나’를 모르고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이 변하니 가전에서도 변화가 따랐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다 보니 혼수로 준비해 갔던 비디오 플레이어가 더는 필요치 않았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내겐 비디오 테잎이 많았는데, 거금을 들여 모두 USB로 바꿨다. 어느 날 남편은 회식이 있다며 늦었고 아이들도 일찍 잠들어 시간이 여유로웠기에 결혼식 촬영 USB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그때가 그립고 궁금해져 꺼내 보았다. 사회자가 “신부 입장” 하자 아부지 손잡고 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저거 저거 내 맞나? 뭔 여자가 저렇게 건들거려, 그것도 신부 입장하면서’
그러고는 나를 차분히 살펴보니 ‘건들거리는구나!’를 알게 됐다. 그러고부터는 계속 나를 관찰하며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계속해서 ‘허리 펴기, 어깨 펴기’를 실천했다.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다가도 ‘아! 참 펴기 해야지!’하며 허리를 폈고, 양치하다가도 ‘아! 참 펴기 해야지!’하며 엉덩이를 뒤로 밀고 허리를 폈다. 허리를 펴면 건들거리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몸이 바르다고 칭찬한다.
수목원에 가면 나뭇가지를 원하는 형태로 잡기 위해 수형 작업 해 놓은 나무가 많다. 그 나무를 관리하는 사람이
‘음! 이 나무는 너무 밋밋해!’하는 생각이 있었기에,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 하고 궁리하게 되고
‘그렇지! 오른쪽 가지를 좀 옆으로 벌여야지. 좋아 굿!’
이렇게 아주 느리게 느리게 나무는 정원사가 원하는 수형으로 자라게 된다.
몸이라는 게, 습관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고쳐지진 않는다. 오랜 시간 지나면서 서서히 변한다.
그 변화는 ‘아! 저거 뭐지?’하는데서 시작한다. 정확하게 인지하지 않고는 그 어떤 시작도 있을 수 없다.
인지란 놈 참으로 대단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