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는 어떤 사이일까? 사람마다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다르기에 관계의 깊이를 느끼는 건 상대적이다. 하지만 가까이 보낸 시간이 한 해, 두 해가 되고, 만남이 편해질수록 서로 친하다고 이야기하는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함께 나누는 대화의 깊이가 아닐까. 호감을 가지고 만난 사이라도 겉도는 대화 속에선 친해지기가 어렵다. 오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서로의 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은 방금 만난 친구'라는 생각을 한다.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데 스스럼없는 성격이다 보니 (상대가 부러 벽을 치지 않는 이상) 만남이 쌓이면서 친해질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어떤 이는 자신에게 특별히 더 가깝게 다가와 준다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 그런 오해(?)는 관계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서로를 내보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 친함의 속도는 비슷해지기 마련이니까.
가족과 속을 내보이며 지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홀로 방안에서 공부만 했고, 스무 살 이후로는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했다. 혼자 지낸 시간이 길었기에 가족이 나를 이해해주는 걸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님이 나를 도와주실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20년 전 언니의 교통사고 이후 부모님에게 기댈 수 있는 내 자리는 없었으니까.
가족 안에서 받는 사랑이 채워지지 않았기에 밖에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을 찾고 또 찾았다. 부족한 면을 보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넌 참 대단해'라고 말해주는 사람,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 넘어지면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을. 나는 그렇게 관계가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내 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건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방일지의 염미정처럼 엄한 사람에게 사랑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받고 싶은 사랑이 채워지지 않는 순간들이 질렸던 걸까.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았다. 스스로 일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거창하지 않았다. 매끼 밥을 정성스레 챙겨 먹었고, 매일 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나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넌 참 대단해', '네가 자랑스러워', '내가 잘해줄게‘ 나를 먼저 사랑해주자는 건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꾸준한 실천은 효력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유난히 마음이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찾았다. 내가 겪어온 경험과 걸음들이 자력이 된 걸까? 그런 그들에게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가만히 손을 내밀어 주며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었다.
내가 해왔던 대로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해주며, 지난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내 손을 잡고 일어나는 사람이 생겼다. 이상했다. 그렇게 누군가로부터 채움을 받으려고 할 때는 힘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채움을 주다 보니 어느새 팔과 다리에는 근력이 생겼고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내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약함을 통해 강해졌다. 만약 결핍이 없었다면 지금껏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떠나지 않았던 결핍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게 해주었다. 이제는 안다. 나만은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것을. 자신을 굳건히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이의 손을 잡아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