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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이 Sep 27. 2024

초짜인 줄 알았더니 만랩

그가 이순신이 될 줄 어떻게 알았을까?

  리더십은 선천적인가 vs 후천적인가


  저명한 학자들, 유명한 HR 분야 구루들에게도 쉽사리 결론내릴 수 없는 이슈다.

  리더십이 선천적이라고 보는 쪽에서는 생물학적 요인이나 특성 이론을 내세우고, 후천적이라 보는 쪽에서는 학습과 행동 및 상황 이론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라 주장한다. 양쪽 모두 일리가 있어 선뜻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복잡한 개념이나 이론을 좀 내려놓고 얕은 경험에 기대어 생각해보자면, 리더십은 타고나는 쪽이라 믿는 편이다. 전혀 리더로서 소양을 쌓을 만한 기회가 없던 사람이 리더로 발탁되어 곧바로 성과를 내는 경우를 적잖이 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동기부여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다못해 대화하는 방식이나 마음을 사는 기술같은 것도 가르친다고 쉽게 따라할 수 없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것들을 원래부터 해온 일처럼 능숙하게 수행하고, 의사결정까지 무리없이 해낸다.

  그런 사람들을 보자면, 마치 본능처럼 타고난 것이라고 밖에 설명하기 어렵다.


  문제는 본능처럼 리더십을 새겨놓고 있는 인재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조직에서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그의 유능함이나 리더십을 충분히 검증할 기회가 있었다면 별 어려움이 없다. 조금씩 기회를 줘보고 시행 착오를 겪으며 원숙해지길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도 괜찮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갑자기 리더의 공백이 생겼거나 완전히 새로운 일을 맡겨야 하는 경우에는 마치 로또를 뽑는 듯한 심정으로 그나마 싹수가 있어 보이는 이를 발탁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임진왜란을 앞둔 선조(조선의 14대 왕)의 심정이 그랬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당시 조선 조정은 일본의 침략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 하삼도(下三道, 남쪽 지방의 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일컫는 말)의 성곽을 수리하고, 군적을 점검하는 등 전쟁을 대비했다. 200년 간의 평화에 젖은 백성들과 수령들은 전쟁이 없을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조정은 제법 강하게 밀어 부쳤다.


  더불어 북쪽 지방의 유능한 장수들을 남쪽 바다에 재배치하는 일도 했다.

  조선 건국 이래 주된 외적은 북방의 여진족이었고, 그렇기에 조선의 정예는 북쪽에 포진된 기병이었다. 그 기병들을 지휘하여 여진족과 크고 작은 전투를 벌여온 이들이 바로 조선의 엘리트 장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순신을 비롯한 원균, 이억기, 박홍 등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수군 절도사로 부임하게 됐다.


  그 중에서도 단연 이순신의 수군 절도사 발탁 과정이 압권이었다.

  이순신은 중년이 훌쩍 넘어선 나이에도 고급 장교로 승진하지 못했었다. 너무나 곧은 처신과 바른 말을 아끼지 않는 성정 탓에, 긴 평화 속에서 정치군인화 된 윗선의 눈에 들지 못한 까닭이다. 오히려 꽤나 괜찮은 전공을 세우고도 패전의 누명 써 백의종군을 한 적도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진작 부장이 되고도 남았을 연차에, 겨우 대리 정도에 머물던 그를 단번에 7계급이나 건너 승진 시켜준 것은 바로 임금인 선조였다. 비변사와 사간원에서는 조선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반대했고(중종 시기 조광조가 7계급 승진한 적은 있다), 이순신을 천거한 류성룡조차 과한 일이라며 의견을 보탰지만 선조는 요지부동이었다. 급기야는 서류상 발령만 내놓고 실제 부임 전에 새로 승진시키는 편법까지 써가며 기어코 이순신을 남쪽 바다 한 구석에 꽂아 넣었다.

  정3품 수군 절도사는 당시 조선 수군 최고위직 지휘관이었으며, 독자적인 작전 권한을 가진 함대 사령관이었다. 같은 계급, 보직이었던 원균이나 이억기·박홍과 달리 이순신은 만년 대리가 하루 아침에 사업부장으로 발탁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묘사한 선조. 인성 못된 것만 빼면 꽤나 유능한 왕이었다. 선조니까 임진왜란을 버텨냈는지도. 그러나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인물.


  고급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줄만한 기회도, 탁월한 수군이라 할 만한 경력도 없던(초급 장교 시절 2년 간 판옥선 2척을 운용했던 것이 전부, 수전 경험은 아예 없음) 이순신의 어떤 점을 보고 선조는 그와 같은 '로또픽'을 했을까?

  (놀라운 일은 훗날 행주대첩을 통해 조선군 최고 사령관(도원수)에 오르는 권율도 선조가 전쟁 전에 발탁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권율은 나이 마흔이 되도록 백수로 지내다 늦깎이로 과거에 급제한 문관 출신이었다)


  이순신의 발탁 과정을 보면, '어쩌다 하나는 터지겠지'라는 심정으로 밀어 부친게 아니라, 선조 나름의 확신을 갖고 추진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의 결과는?


  말해 뭐하는가.

  난생 처음 수전을 경험하게 된 이순신은 7년 간 23번 싸워 23번을 모두 이겼고, 적선 800척을 침몰 시키는 동안 자신은 '단 한 척'도 잃지 않았다. 30척도 안되는 함대로 시작해, 전쟁 중 조정의 아무런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160척이 넘는 당시 아시아 최강의 함대를 키워냈었다. 그리곤 누군가(원균) 그걸 한 방에 말아 먹어 12척으로 쪼그라들은 상태에서 적선 133척을 상대해 이기고, 다시 2년만에 80척 규모의 함대로 부활시켰다.

  이 정도면 로또도 그냥 로또가 아니라, 거의 1조짜리 미국 파워볼 수준이다.





  살펴봤듯이 이순신은 이순신이니 그렇다 치고, 별다른 데이터도 없이 그를 발탁한 선조의 혜안이 놀랍기 그지 없다. 어쩌면 그런 혜안이야말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 이해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내막이나 선조의 진짜 심중을 알 길은 없다. 그래서 지금 관점에서 그를 재단하는 것이 매우 피상적일 수는 있지만, 선조 나름의 인재관은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근대 시대의 열악한 통신과 교통 수단을 고려할 때 인재들을 수시로 대면했을리는 없고, 대부분 서류나 임금 주변의 정승·판서들의 입을 통해 인물평을 접했을 것이다. 이순신의 상관이 부당하게 그를 헐뜯는 상소를 올렸어도, 선조는 글의 맥락에서 숨겨진 진실을 캐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자신의 추론을 증명해줄 객관적인 인물평을 골라내는 능력도 있었을 것이다.

 

  그토록 한정된 정보만으로도 선조는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를 발견했다. 그리고 주변의 거센 반대도 무릅쓰고 발탁을 관철시킬 뚝심과 의지도 갖고 있었다. 그런 점이야말로 리더로서 선조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었다.




  춘추전국시대 때 인재를 찾는 방법 중, '오시법(五視法, 다섯가지 요소를 본다는 뜻)'이라는 것이 있었다.

  발탁할 인재가 평소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누구에게 부를 베풀고 있는지, 그가 어떤 사람을 쓰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지 않는지, 어떤 것을 갖지 않는지 등 상황과 맥락을 다각적으로 고려하라는 취지이다.

  굳이 따지자면, 상황 이론에 가까운 방법이다.


  이순신을 발탁한 선조든, 춘추시대의 오시법이든 결국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수집까지는 후천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다음, 수집된 데이터를 그 모수의 빈약함이나 정보의 불확실성을 감안하고 해석해내는 것은 아마도 타고난 감각일 듯 싶다. 그리고 해석까지 마친 뒤에 결론짓고 그에 따라 강행하는 것은 용기의 영역이다.

  그 정도 노력과 감각, 용기가 있어야 감히 초짜를 만랩들 앞에 내세우는 무모한 도박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리더십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에 여러 상황이 더해지고 부단한 학습을 통해 더 향상될 수 있는 역량이다. 참, 말은 쉽고 아름답고도 뻔하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걸 실행해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묘사한 이순신. 이 양반은 정치질 빼고 다 잘했다. 레딧에서 넬슨을 제치고 세계 역사상 최고의 해군 사령관으로 뽑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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