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를 타고 부산에서 돌아오는 길, 어묵을 나눠주는 H가 나의 옆에 앉아 있다. 가족들에게 드리려고 어묵을 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H가 먹고 싶었나 보다. 나에게 하나만 맛만 볼까 물어본다.맛만 보기로 했지만,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 어떤 맛의 어묵을 나와 함께 먹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엽고사랑스럽게, 그리고 고맙게 느껴진다. H는나의 입에 어묵을 더 많이 넣어준다. 이 기분은 꽤 감동스럽다. 말로는 자신이 배불러서 그런 거라고, 내가 먹는 것을 보는 게 좋다고 하지만 말이다.
간밤에 책을 선물할 때 엽서가 같이 들어있었다. 계산할 때 서점 아저씨가 넣어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빠 편지 써준줄 알았어”
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린다. 이 순간의 진심과, 마음을 다한 글을 간절히 전하고 싶다.선물했던 책과 엽서를 H의 품에서 다시 데려온다. H는 됐다고 하며 말린다.
됐다고 하는 말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그 아픔을 감수할 만큼 글을 꼭 써주고 싶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H의 마음에 닿을 만한 글을 쓸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음번에 더 좋은 글을 쓰면 된다.앞으로 계속해서 도전하면 된다. 그 도전의 기회는 앞으로의 내가 만들어 갈 것이다.
편지를 쓰기 위해, 책 내용을 전반적으로 천천히 읽어본다. 심채경 작가님이천문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지켜나가면서도,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이 책에 자주 겹쳐 보인다.
나중에 H의 미래 또한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그 미래에, H의 곁에 내가 있지 못할 수도 있다.하지만 그러한 미래라고 하더라도 H가 진심으로 잘 살아가길, 행복하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모든 마음을 다해 기원한다. 남은 생의 기간 동안 H가 덜 슬프고 덜 고생하길, 더 기쁘고 더 행복하길.
천문학자 책에서 좋았던 점은다른 사람을 위한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필자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 많은 직장인 엄마의 설움은 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회사에서도 자신은 사라지고, 집에서도 자신은 사라지고 가족만이 남는다. 그러나심채경 박사님은 자신의 삶과 루틴 안의 자신 스스로 오롯이 서있었다. 가족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 하였고, 직장인으로서, 연구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 나는그게 멋져 보였고, 그게 옳은 삶이라 여겨진다. 앞으로의 H 또한 그런 삶을 살아나가길 바란다. 남을 대리하는 역할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길. 내가 계속 곁에 있고 싶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이런 슬픈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적어 내려간다. 내가 곁에 없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꼭 챙길 수 있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H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아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적는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빛을 발하는 조그마한 신념을 정면으로 바라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