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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생 Oct 06. 2024

별을 보지 않는 연구자, 그리고 편지

KTX를 타고 부산에서 돌아오는 길, 어묵을 나눠주는 H가 나의 옆에 앉아 있다. 가족들에게 드리려고 어묵을 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H가 먹고 싶었나 보다. 나에게 하나만 맛만 볼까 물어본다. 맛만 보기로 했지만,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 어떤 맛의 어묵을 나와 함께 먹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리고 고맙게 느껴진다. H는 나의 입에 어묵을 더 많이 넣어준다. 이 기분은 꽤 감동스럽다. 말로는 자신이 배불러서 그런 거라고, 내가 먹는 것을 보는 게 좋다고 하지만 말이다.




간밤에 책을 선물할 때 엽서가 같이 들어있었다. 계산할 때 서점 아저씨가 넣어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빠 편지 써준 줄 알았어”


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린다. 이 순간의 진심과, 마음을 다한 글을 간절히 전하다. 선물했던 책과 엽서를 H의 품에서 다시 데려온다. H는 됐다고 하며 말린다.

됐다고 하는 말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그 아픔을 감수할 만큼 글을 꼭 써주고 싶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H의 마음에 닿을 만한 글을 쓸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음번에 더 좋은 글을 쓰면 된다. 앞으로 계속해서 도전하면 된다. 도전의 기회는 앞으로의 내가 만들어 갈 것이다.


편지를 쓰기 위해, 책 내용을 전반적으로 천천히 읽어본다. 심채경 작가님이 천문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지켜나가면서도,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이 책에 자주 겹쳐 보인다.

나중에 H의 미래 또한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그 미래에, H의 곁에 내가 있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미래라고 하더라도 H가 진심으로 잘 살아가길, 행복하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모든 마음을 다해 기원한다. 남은 생의 기간 동안 H가 덜 슬프고 덜 고생하길, 더 기쁘고 더 행복하길.


천문학자 책에서 좋았던 점은 다른 사람을 위한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필자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 많은 직장인 엄마의 설움은 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자신은 사라지고, 집에서도 자신은 사라지고 가족만이 남는다. 그러나 심채경 박사님은 자신의 삶과 루틴 안의 자신 스스로 오롯이 서있었다. 가족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 하였고, 직장인으로서, 연구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 나는 그게 멋져 보였고, 그게 옳은 삶이라 여겨진다. 앞으로의 H 또한 그런 삶을 살아나가길 바란다. 남을 대리하는 역할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길. 내가 계속 곁에 있고 싶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낀.


이런 슬픈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적어 내려간다. 내가 곁에 없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꼭 챙길 수 있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H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아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적는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빛을 발하는 조그마한 신념을 정면으로 바라볼 뿐.

때로는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으로, 어쩌면 때로는 소중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갈 H도

지금처럼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소중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길 바라.


- 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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