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로 문학하기 ‹비가 온대 내일도›
에픽하이 EP 앨범 «Sleepless In __________»(2019.03.11.)중에서 ‹비가 온대 내일도›*.
(*작사: 타블로, 미쓰라진 / 작곡:타블로)
https://youtu.be/jnTSbyIwZ8Q?si=io1FqMb3oZgiqewP
무인도가 된 매트리스
이젠 술과 수면제도 안 들고
밤새 켜둔 sleep playlist
끝없는 beats to relax and study to
fuck'em all
man I hate this
내일
오늘과 어젠 뒤섞이고
기억들이 랜덤 액세스
언제나 과부하가 돼
내가 가는 길
막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수십 번을 반복해서 걷는 길
내가 하는 일
창작이란 그럴싸한 이름에 스스로 벽을 세워 넘는 일
살아가면서 느낀
은하수만했던 감정들을 건네고 별 몇 개를 얻는 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네
저 먹구름들은 내게 다르게 말해
They say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생각의 바다
끝을 모르니까 자꾸 빠져드는가 봐
매일 밤 자유롭게 헤엄치려다가
결국 파도처럼 부서지고 말아
밤은 갈수록 길어지고 검어져
때론 달과 달 해를 넘어서
답을 찾다 자꾸 돌아보게 돼
정답이 없어서
쓰러져도 일어나 무너지기 위해 걷기 시작한 건 아닌데
남을 채워주려 비우다 사라지게 될 운명이라는 건 아는데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만 지네
쫓고 있는 꿈이 너무 많아서
새벽녘에 잠이 드네
눈 감아야 자유로워지는 나라서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비가 온대 내일도
에픽하이의 노래 ‹비가 온대 내일도› 가사
비 내리는 날을 좋아했던 건, 어쩌면 위로받는 기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햇빛이 쨍하거나 하늘이 맑은 날은 그런 날씨대로 기분이 밝았지만, 날이 좋아서 내 기분도 그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 적도 종종이었다. 비가 내리는 새벽이나 아침은 의무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낮은 기분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무게를 자주 덜어주었다. 들리는 빗소리는 마음을 부담 없이 받아주었다. 그래서 비 내리는 날을 좋아했다. 어린 때는 일부러 비를 맞으러 나가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못 말린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가랑비나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부모님에게 말했다. 비 좀 맞고 오겠다고. 조금씩 젖어가는 머리카락과 옷에 맺히는 빗방울을 보면서 불어오는 바람을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 마을 어귀를 걷다 보면, 지난 일들이 떠올라 상념에 빠지기도 했고 구름의 움직임과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를 들으며 세상 돌아가는 일들의 작음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스무 살,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는 장마기간에는 자주 우산을 쓰고 나가 걸었다. 부스스한 기분으로 슬리퍼를 신은 채 나가기도 했고, 써야 할 글이나 과제가 있는 날은 작정하고 채비를 해서 카페에 있다 오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안아주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하늘이나 공중에서 붕 뜬 마음이나 허공에 있는 것들을 내리는 비가 가라앉도록 해주는 생각이 들어 차분해질 수 있었다. 비슷한 마음으로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중간의 평온한 마음은, 좋은 일로의 기분이나 들뜬 마음의 기분들에서 찾거나 되돌아오기가 어려웠다. 낮거나 우울한 기분의 상태에서 평온한 마음은 더 쉽고 가볍게 올 수 있었다.
누나와 매형이 있는 집에서, 비 내리는 날은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도 자주였다. 나를 혼자 있도록 배려해 주고 이해해 주는, 마음이 감사해서 나는 온전히 내 기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문을 열고 나가 누나와 매형과 대화를 하거나 누나가 차려준 밥과 반찬에 국에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서울 생활에서 깊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고향에, 내 방에 있는 날은 서재에 꽂힌 책들의 등을 보고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책등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도 보태주는 평온함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내가 가려는 방향에 대해 잠시 멈춰 생각해 보도록 해주는 것 같았다. 해보고 싶은 게 많고 꿈이 많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그런 만큼 고민을 많이 하는 나이기에, 혼자 하는 생각들로 늘 신중한 편이지만 충동적일 때는 참았던 것만큼 한없이 충동에 이끌리기도 한다.
비 오는 날을 걷다가 오는 저녁이면,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잡고 돌아와 잠드려는 밤이면 내일도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네가 여전히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떤 연인처럼 생각하는 같은 마음. 맑은 날보다 맑지 않은 날에 쓰이고 정리되는 마음들이 많았다. 낮아진 기분이나 평온한 마음이라거나 무기력에는 어떤 힘들이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읽었던 책들 가운데 기억하는 하나의 책은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쓴 "여름밤 열 시 반"이라는 소설이다. 로드리고 파에스트라 라는 인물이 자신의 부인을 비롯해 부인과 외도한 남자를 죽이고 수배 중이라는 이야기가 소설 전체의 배경이 되는 가운데, 폭풍우로 여행을 잠시 쉬고 있는 주인공 마리아의 심리와 파에스트라의 살인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소설은 매혹적인 문장으로 풍부해진다.
지평선은 폭풍우 덕분에 맑게 씻겼다. 지평선과 밀밭의 경계선은 칼로 자른 것 같다. 무더운 바람이 일어나 도로를 말리기 시작한다. 날이 새면 해가 눈부시게 내리쬘 것이다. 밤은 아직 이슥하다. 막연한 의식 속에 왠지 해결이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밤 열 시 반. 그리고 여름. 그러고 나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다. 드디어 밤이 찾아돈다. 그러나 오늘 밤 이 마을에는 사랑을 위한 장소는 없다. 마리아는 이 명백한 사실 앞에 눈을 내리깔고, 그들은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겨질 것이다. 그들의 사랑을 위해 마련된 이 여름밤, 마을이 온통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폭풍우는 갈 때도 올 때와 마찬가지요. 갑자기 시작되었다가 갑자기 그치니까.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클레르."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녀의 공포로부터, 공포에 빠진 그녀의 젊음으로부터 발산되는 저항하기 어려운 향기, 그것은 마리아에게서는 아직껏 느낄 수 없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났다. 지붕 위는 텅 비어 있다. 거기서 사람들이 서로 붙잡고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아무리 안달해봤자, 지붕 위는 영원히 텅 빈 그대로일 것이다. 빗줄기는 가벼워졌지만, 빈 지붕이 비에 젖어 있는 모습만 보일 뿐 마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아 있는 것은 꿈에 그리던 고독의 추억일 뿐이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빗소리를 듣는 밤,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확신이 들지 않는 마음에서, 내리는 비가 나를 평온하게 해 주고 빗소리가 나를 침착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 마음을 반복하고 번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들에 대해서도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