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이 스트레스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쌍둥이 중 한 명을 우주로 보내 지구에서 사는 것과 노화를 측정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늙지 않은 쪽은 우주인이었다는 결과와 스트레스와의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댓글을 읽으며 나는 중력에 대해 생각한다. 중력이 스트레스를 만든다, 스트레스는 노화를 촉진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조금 힘들다 나는 오늘 조금 우울하다 느껴지는 날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구가 나를 조금 더 끌어당기고 있구나. 지구가 나를 향한 중력이 세졌구나. 생각하고 나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덜 우울해질 수 있었다.
-2023년, 계간 «애지» 가을호에 발표한 시 <중력>.
젊든 늙었든, 선량하든 악하든
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가는 것은
없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 <지옥은 닫힌 문이다> 중에서.
하늘이 어두워질 때를 사랑했다. 밖으로 나갈 때, 용기는 밤에 더 커졌고 낮보다 낮아진 기온에서 자신감은 더 커졌다. 방안에 있을 때면 색온도가 낮은 스탠드 불빛이나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에만 의지해 일부러 책을 읽곤 했다. 밤하늘 보는 것을 좋아했던 건 어둠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다 가려주는 느낌은 곧 모든 것을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일곱 시면 이미 인적이 끊기는 마을에서, 가로등은 의미가 없었다.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기도 했지만, 일찍 꺼진 가로등 아래를 걷고 있으면 편안했다. 비행기의 항법등을 지켜보는 일과 보면서 걷는 일을 좋아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어두워진 하늘에서 빛나는 건 달과 별빛, 지나가는 비행기의 항법등이 전부였다. 항법등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아졌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사람들이 타 있는 것, 저 사람들은 어디에서 타서 어디로 가는 것일지, 어떤 목적과 성과를 위해 어떤 기억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비행기 불빛의 흐름은 어둠 속에서 무척이나 부드럽고 수월한 항로로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내가 용기를 키울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랬던 어둠 속에서 치명적인 계절을 보낸 한 시기는 몸과 마음마저도 무너졌었기에 다른 어둠으로 기억된다. 마음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내가 어디까지 가라앉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 시기의 마음은 삶을 포기한다는 판단이나 결정이 아닌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끝을 생각해 보는 마음이었다. 인정해버리는 어둠에서 나를 건져내는 것 역시 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내 마음의 끝을 어두운 방과 어두운 마음, 어두운 눈물을 통해 견뎌내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아픈 사람이었다.
입으로 내뱉는 단어나 문장은 결국 사람의 습관이 되고 행동 그리고 얼굴의 일부로 드러난다고 믿는 나는,
내 상처나 내 상태를 곧 인정하고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숨기는 마음들이 많기에 나는 분명 예민한 사람이자 민감한 사람이 된다. 사람과 대화 중 내 상처를 드러내는 일은 고백이자 자백이지만 그럼으로써 나는 현재의 내 상태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임을 자각하려고 하기도 한다.
아픈 마음 상태를 담담하게 고백하는 것이, 다시 사람을 마주할 때 내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종종 그렇게 돌아오는 밤길에서 중력을 생각했다. 하늘에서는 가벼워지는 일이, 땅에서는 무거운 일이 되는 것, 지구가 나를 더 끌어당기고 있구나 그래서 내가 더 힘들어하고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면 밤하늘을 보는 일에 평온해지고 편안해졌다.
에픽하이의 노래 <One>에서 나는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구원이자 하나의 사람이 나였음을 생각한다. 이 노래를 들을 때 슬퍼지는 이유는 어두울 때의 나를 생각하는 일인데. 이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가 되는 이유는 어둠 속에서의 상처와 흉터를 인정하고 빠져나오는 구원의 손길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나 어떤 시간이 끝나면 나는 복기하는 마음을 물리적인 시간으로 보내는 데에 할당한다. 그래야 회복하고 마는 내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특징은 과연 문학하는 것에 적합할까, 직장인의 생활에 적합할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어떻든 견디고 있는 것이다. 견딘다고, 경험해 본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되는 이치라고도 생각한다. 무너지는 마음도 나인 동시에 일어서는 마음도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약하면서도 강한 사람이 되고 만다.
세계대전의 패배로 막대한 인플레이션에 놓인 시기의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해 대부분을 하층의 노동자 삶으로 보낸 소설가이자 시인-찰스 부코스키의 마음은 어쩌면 스스로를 지독하게 처벌하고 채찍질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가는 것은 없다는, 무너짐과 무게를 말하는 일은 삶에서의 치열인 동시에 스스로의 지혈인 일이 된다.
그래서일까. 찰스 부코스키의 묘비명은 "Don't try". 애쓰지 말라는 자조적인 마음과 위로를 건네는 말에서 나는 먼저 생각한다. 스스로를 견디고 품으며 강해지는 마음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