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제이 Aug 09. 2024

결혼

이대로는 안 되겠어

“다시 제자리인 것 같아요. 조금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요.”


이번 상담을 시작하며, 나는 눈물이 고인 목소리로 말했다. 희나의 아픔, 남편의 침묵, 명절 동안 시작된 내 폭식증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의 행복감이 다시 좌절로 변하면서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상담사는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이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답했다.


“‘너, 우울증을 안고 사는 남편과 함께 살아낼 자신이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정말 행복하고 싶어요. 전 밝은 사람이지만, 남편은 나를 깊은 수렁으로 끌고 가요. 온기가 절실해요.”


상담사는 우리의 관계를 이어주는 힘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안정감이겠죠. 하지만 이제는 그 안정감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해요. 결혼과 출산, 가정이 제게 안정이었지만, 그것이 이제는 단순히 형식적인 안정에 불과하게 되었어요. 따스함이 없으니, 저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가요.”


상담사는 우리의 문제를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이겨내야 할 공공의 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의 회피와 나의 불안, 그리고 내가 아직 불안과 나 자신을 분리할 힘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남편의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는 땅을 내려다보며 음침하게 걷고, 어깨는 늘 구부정하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인터넷과 게임뿐인 듯하다. 그는 하루를 시작하며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마다 그는 눈을 피하고, 내 사랑은 왜 그에게 깊은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나를 만날 즈음, 그는 7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2년을 홀로 지낸 후였다. 그의 어머니는 췌장암 말기로 가족 모두가 함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39세의 나이에 결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자기 이혼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내게 그는 완벽한 남자였다. 말수가 적고, 유명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독서까지 하는 그였다. 소개팅에서 만난 연애 경험이 전무한 남자들이나 여우처럼 행동하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그는 듬직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는 자주 연락을 하고 맛있는 것을 사주었으며, 출장을 다녀오면 선물까지 잊지 않았다. 그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애할 때 그의 어두운 면은 보지 못했다.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이혼 사실과 비디오 게임에 대한 집착, 여자 아이돌 가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처음에는 완벽해 보였다. 신혼의 행복 속에서 믿음직하고 자상한 남편과 함께 하며 행복함을 느꼈다. 그러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남편이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때는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신중하게 대답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외로운 날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규칙적으로 출근하며 매일 안아주고 뽀뽀를 해주었고, 퇴근 후 전화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내뿜는 무미건조함이 나를 질식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4년 넘게 내게 먼저 잠자리를 청하지 않았고, 자위 행위를 하면서 자주 들켰다. 그는 화면 속의 여성들에게 매혹되었고, 나는 그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었다. 그는 내가 매력적이라고 말했지만, 섹스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나를 꾸짖을수록 그는 나를 피해 다녔다. 잔소리가 심해질수록 그는 얼굴을 이불에 파묻고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나는 슬플 때마다 술을 마셔 뇌를 무력화하고, 화가 날 때는 짜고 매운 것들을 마구잡이로 먹었다. 그 후에는 후회와 자아 혐오가 반복되었다. 다이어트 약에 의존하며 체중에 집착했고, 그 약에 마약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중독 증세를 보였다. 체중과 약값에 대한 강박은 미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진정한 원인을 찾고 싶었고, 스트레스와 쓰레기 음식을 먹으며 자신을 혐오하는 악순환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고 싶었다. 다이어트 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라인 정신 상담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개별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다.


“오빠, 이대로는 안 되겠어. 날 사랑한다면, 우리 둘 다 상담을 받아보자.”

 

이전 03화 폭식의 재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